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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볏짚은 원래 자리인 논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하병연 이학박사/시인 국립상경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술연구교수
가을이다. 농업에서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여름에 푸르게 자랐던 지상물의 유기물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토양 속 식물 뿌리에서 토양 수분과 양분을 아낌없이 지상부로 올려줌으로써 이파리나 줄기가 공중에서 자랄수 있게 된다.
만약 지하부 뿌리 혼자만 살려고 지상부로 물과 양분을 올려주지 않으면 지상부는 자랄 수 없고, 결국 지상부가 자라지 못함으로해서 지하부 뿌리도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지상부 줄기나 잎은 지하부로부터 공급 받은 물과 양분을 이용하여 태양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다시 단백질을 합성하여 자기의 몸체를 키우고 광합성산물을 지하부로 내려주어 지하부 뿌리가 잘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식물은 보이지 않는 지하부의 도움없이는 지상부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가을의 수확물은 모두 지하부와 지상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먼 산의 나무와 들판의 풀들은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상부와 지하부의 자연순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가을이면 지상부에 있는 이파리나 줄기가 자연적으로 땅으로 떨어져 내려 지상부 양분을 지하부로 내려준다.
봄에서 가을까지 부지런히 지하부 뿌리에서 양수분을 지상부로 올려 준 댓가로 양수분뿐만 아니라 유기물이라는 이자까지 듬뿍 채워서 돌려 받은 셈이다. 또한 지상부로 공급해준 양수분을 액체 상태로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낙엽이나 줄기와 같은 고체 형태인 유기물로 돌려받는다.
그 유기물 속에는 유기성분인 탄화수소, 즉 공기, 태양빛, 물의 구성성분인 탄소, 수소, 산소 원소가 있고 지하부 토양 광물질로부터 얻은 무기성분인 질소, 인산, 칼리, 마그네슘, 칼슘, 유황 성분 등이 들어있다.
이런 유기물은 토양 미생물의 밥이 된다. 먹을 것이 많으면 미생물의 인구 밀도도 덩달아 높아진다. 살기 좋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양 미생물도 먹을게 많고 살기 좋은 곳에 모여 산다. 토양 미생물이 많으면 토양 환경이 좋아져서 결국 작물 생육도 좋아지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 농경지에는 이런 자연 순환 고리를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예가 볏집을 소 먹이용 사료로 공급하기 위해 논에서 볏짚을 둥근 흰 롤(Roll) 형태로 만들어 수거해 가고 있다.
소를 먹이기 위해 지하부 미생물을 굶기는 형국이다. 토양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써 안타깝기 그지 없다.
벼의 지하부-지상부의 순환고리가 끊기게 된 셈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논토양 유기물 함량은 1920년대에 4% 대 이었던 것이 지금은 2% 대로 떨어져 절반이상이 줄어들게 되었다.
토양 내 유기물의 역할은 무궁무진하여 토양 관리는 유기물 관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토양 유기물은 토양의 밥이고 보약이다.
볏짚은 우리나라 논토양 생태계 보존과 농업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서는 반드시 논으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주어야 논의 자연 생태 환경이 제대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 손쉽다고 해서, 싸다는 경제적인 논리로 아무 생각없이 무작위로 논토양 밥을 강탈하면 나중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결과는 지상부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 온다. 두말할 것 없이 가장 큰 피해는 농민들에게 올 것이다.
소의 배를 불리기 위해 토양 미생물 배를 굶기게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 가을, 볏짚은 원래 자리인 논으로 다시 되돌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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