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일)
> 김광호 칼럼니스트
어른의 말과 행동은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린 이른바 인공지능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점에 예기 '곡례"의 가르침을 꺼낸다는 것이 고개를 절로 흔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바로 자녀 교육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들에게는 항상 속이지 않는 것을 보이며, 바른 방향을 향해 서며,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도록 가르친다."
부모 즉 어른에게 안내하는 자녀 교육에 대한 지침이다.
교육이란 다름이 아닌 말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평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는 것, 행동하는 것, 듣는 것'의 삶을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먼저 항상 속이지 않는 것 즉 보이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아이에게 삶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가르치지 말고 실제 삶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행동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엔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어른이 많다.
흔히 착하고 정직한 삶을 밥상머리에서 말하면서 집밖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 한두 명이 아니다.
말은 볼 수 없지만 행동은 볼 수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어기면서 아이들에게 행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행할 수 있겠는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에 앞서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특히 부모의 말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은 아이에게 잘못된 삶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부모도 아이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이루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어른도 아이에게 성공을 위해선 말이 행동에 앞서야 한다고 역설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른의 말은 맑은데 그들의 행동이 혼탁하여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만 배우고 행동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윗 잎이 파래야 아랫 잎도 파랗다.
다음으로 바른 방향으로 향해 서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방향으로 선다는 것은 바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요, 바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나침반을 몸과 마음에 정착했다는 의미이다.
우린 매일 집을 나서면서 그 나침반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순결한 길을 걸었던 윤동주나 이육사 시인처럼 말이다.
두 시인은 자신만의 섬(立)으로 일본인들의 오염된 삶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절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나침반을 지닌 어른 밑에서 자란 아이야말로 작은 이익에 초연할 것이며 결과만을 좇는 약삭빠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의 삶이 곧 아이들의 삶의 이정표요, 부모의 촛불이 자녀의 등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른이 올곧고 부모가 의로운데 어찌 아이들이 눈앞의 이익에 흔들릴 것이며 나쁜 권력 앞에서 전전긍긍할 것인가?
하늘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두 개의 눈과 귀로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으라는 의미이다.
즉 다른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제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비스듬한 자세로 삶을 대면하게 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모든 말에 ‘YES’만 하고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자아를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귀를 잃어버리고도 그 귀를 찾지 못하는 우린 누구란 말인가?
이런 자아를 찾기 위해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바른 자세로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책도 읽고 지식도 익혀 삶의 지혜를 쌓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뜻이 사람들 사이에서 물 흐르듯 통할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시대에 맞지 않게 예기와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시대가 변했지만 사람이 가야 할 길만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다.
만약 위에서 말한 3가지를 부모가 아이에게 말로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또 다른 나쁜 어른으로 조금씩 자랄 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이 지은 「야설(野雪)」이라는 작품으로 글을 가름하고자 한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에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지니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좋은 어른은 말을 하기 전에 행동을 먼저 한다.
2021.05.18. 김광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