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일)
<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
여순 동백의 언어
-여순항쟁 71주년을 생각하며
우동식
여순 동백은 눈동자다
수없이 수도 없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주시하는 눈동자다
아들 잃고 남편 잃고 부모 잃고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
벌겋다
벌겋다 못해 핏발이 섰다
여순 동백은 입술이다
아직, 다물지 못한 입들이 붉게 살아나
‘우리가 무슨 죄냐’
‘우리가 무슨 죄냐’
한겨울을 피운다
한겨울을 꽃 피운다
여순 동백은 저항의 촛불이다
온몸 비틀어 꿈틀꿈틀
깨어난 자들의 처절한 손짓 발짓으로
적폐를 부수뜨리려 했다
‘뭐하고 있어’
‘뭐하고 있어’
할 일 많고 갈 길 먼데 뭐하고 있느냐고
채찍이 가한다
깨어난 영혼들이 나를 둘러친다
한창일 때 툭, 떨어져
바닥에서도 또 피어나는
여순 동백의 언어
뜨겁다
뜨겁다 못해
스스로 불빛이 되어 망망대해를 밝히다가
밑바닥에까지 온통 불을 지펴
시대의 적폐를 또 태운다
한겨울 건너 봄을 피운다
///詩詩한 이야기
-여순사건 71주년, 동백의 언어는 더 뜨거워지고.....
우동식 시인
필자는 작년 4월 초 여수 오동도를 갔다가 머릿 속에 각인 된 그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오동도 방파제 끝나는 지점에서 오동도 능선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 해는 유난히 동백꽃이 선연했고 많이 피어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칫 할 수밖에 없었는데 수많은 눈동자들이 이방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마치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의 피 눈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백꽃보다 더 붉은 눈물을 흘리며 붉은 눈물, 붉은 슬픔’을 노래 한 변종태 시인이나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 있는가?’ 용혜원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얼마를 더 지났을까 동백나무 숲들이 길을 가로 막고 일제히 입술을 열어 아우성치는 음성 같다. ‘우리가 무슨 죄냐 우리가 무슨 죄냐’고 우리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느냐고?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서둘러 나는 그 길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촛불을 들고 스크럼을 짠 많은 동백나무들이 시대의 적폐를 부수뜨리려고 일어 선 자들의 영혼처럼 ‘할 일 많고 갈 길 뭔데 뭐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고 채찍을 가하는 것만 같았다.
수천그루 동백 꽃 등불이 불을 밝히고 망망대해를 밝히다가 밑바닥에 까지 불을 지펴 또 시대의 적폐를 태우는 듯하다. 박진성 시인의 ‘내 몸 붉은 피에 불 지르고 싶다’ 는 언어에 이르게 된다.
‘목숨들이 송두리째/ 뚝,뚝 떨어져내린다더군/ 나, 면회간다 동백교도소로/ 거긴 혁명가들이 우글우글 하다더군’ 송찬호시인은 동백의 언어를 혁명가들이라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필자는 그 강력한 끌림을 주워 담아 시를 썼고 여도초등학교 조승필 선생님은 그 시에 강력하게 이끌려 곡을 붙였는데 안철 가수는 백건이라는 이름으로 이번에 음반을 냈고 ‘여순동백의 언어’를 시 노래로 수록하였다.
올해 10월 19일은 여순사건 71주년을 맞이하는데 동백의 언어는 더 뜨거워지고 불태워야 할 적폐 또한 여전히 깊기만 하다.
그 시대의 적폐에 대항 한 자들이 국가 공권력을 넘어 국가 폭력에 의해 진압되는 과정에서 애매모호하고 영문도 모른 체 죽어간 그 희생자들의 넋이 오동도 동백꽃을 통하여 참, 붉은 언어로 내 뱉고 있는 것이다.
여수의 나무가 동백이고 꽃이 동백꽃이다 보니 더욱 여수의 아픈 사건을 상징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