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식의 <시 읽어 주는 남자>
하선(下船)
이성배
밥은 묵었나
내사 요새 통 밥맛을 모르겄다 아이가
담배 하나 도
그래도 담배 맛은 안변하니 쪼개이 더 살것제
사람이 희안하제
바다 우에서는 그리도 바다가 실터마는
바다 내음 못 맡으니 답답해 미치겄다
그래 우짜노 요래 쪼그리고 썩은 갯냄이라도 맡아야지
한 세상 잠깐 인기라
열여덟에 첫 배 탔으니 벌써 오십년이 지났따 아이가
그때가 좋았는기라
전부 손으로 해서 심은 들었찌마는
앞 바다만 나가도 맹태가 천지삐까린기라
한 배 잔뜩 풀어 놓으면 그기 다 돈이였제
여편네 주고도 한 매칠 방석집 가서나들
궁디는 두드릴 수 있었다 아이가
그라다가 그 맹태 쪼차서 북양까지 안갔더냐
니 산만한 파도 못봤제
바다가 벌떡 일어나 산처럼 덮치는 기라
파도가 몸에 묻으몬 그대로 칼이 박히는기라
물에 살갗이 찢어지는 기라
말도마라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겨따 아이가
죽은 사람 쌔삤다 아이가
어이구 우째 그 일을 했는지
인자는 천만금 준다캐도 못할끼라
못난 서방 파도 우에 띄워놓고 간 졸이다
그기 병이 되가꼬 마누라 일찍 안갔나
자슥들 다 소용없는 기라
지 잘나서 큰 줄 알제 오데 애비 에미 고생 모른다카이
한 세상이 배 위 인기라
사는 기 파도 우에 미끄럼인기라
내는 고기를 쫓고 또 태풍은 나를 쪼차오고
죽을 똥 살 똥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벌써 여기 아이가
참말로 잠깐이제 잠깐 인기라
이제 고마 내도 세상에서 내릴 때가 된기제
항구가 바로 코 앞이제
담배 하나 더 도고
<詩詩한 이야기 >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는 순간....."
우동식(시인)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는 경상도 한 사내가 보인다.
경상도 구수한 사투리로 담배 연기처럼 한 모금씩 풀어놓는 그 이야기보따리는 술술 풀리지만 그 내용과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 옆에서 열심히 그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는 또 한 사람, 시인이 보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난날이 오버랩 되면서 일생을 되돌아보는 화자의 독백을 그대로 필사 하듯 받아 적는다.
삶이 시가 되고 시가 삶이 되는 순간이다.
이 시를 보면 누구나 시인이며 누구나 시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뒤돌아보면 모두가 시요. 시적인 삶이고 또 삶은 곧 시문이다.
왜 시인은 ‘담배 하나 도’ 로 시작하여 ‘담배 하나 더 도고’로 시문을 매듭지었을까?
인생이라는 게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사이, 담배 한 개비의 연기가 사라지는 순간임을 암시하고 있다 ‘참말로 잠깐이제 잠깐 인기라’ ‘한 세상이 배 위 인기라 ’ ‘사는 기 파도 우에 미끄럼인기라’
“나 두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거냐 / 나두야 가련다”
-떠나가는 배 중략, 박용철
박용철시인은 일제 강점기,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미래지향적인 의지를 지니고 ‘나두야 가련다, 라고 인생을 배에 비유하고 있다.
“칼로 물을 베니 물은 계속 흐르기만 하고, 술로 근심을 달래니, 근심은 더욱 깊어만 가네,
인생어디 뜻대로 되는 게 있으랴, 훌훌 벗어던지고 홀몸 일엽편주에 맡겨보리라” 이백시인의 고백처럼 망망대해에 일엽편주(一葉片舟)로 떠 있는 배가 인생 일 뿐이다.
‘바다가 벌떡 일어나 산처럼 덮치는 기라/ 파도가 몸에 묻으몬 그대로 칼이 박히는기라/물에 살갗이 찢어지는 기라/ 말도마라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겨따 아이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인생의 배를 띄워놓고 일생을 항해 하다가 항구에 닿는 것이 하선(下船)의 순간이다.
‘이제 고마 내도 세상에서 내릴 때가 된기제 항구가 바로 코 앞이제 .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해 아래 수고한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는고 다 바람을 잡는 것 같다는 잠언 솔로몬의 고백이 들린다.
유안진의 ’바람의 아들 ‘이고 서정주의 나를 만드는 자화상의 ’팔 할이 바람‘일 뿐이다. 당신의 배는 어디쯤 항해 하고 있는가?
당신의 배는 안전 한가?
서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