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일)
-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 같았던...
▲강성재 시인
어시장을 펼치다
강성재(서울신문 2024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초승달 어둑새벽 선잠 깬 종소리에
경매사 손짓 따라 어시장이 춤을 추고모닥불 지핀 계절은
동백꽃을 피운다
항구엔 수유하는 어선들의 배냇잠
활어판 퍼덕이는 무지갯빛 물보라
물메기 앉은자리 곁
삼식이도 웃는다
눈뜨는 붉은 해 동녘 하늘 헤엄치고
활강하는 갈매기 떼 생사의 먹이 다툼
금비늘 남해 바다엔
파도가 물결친다
자자자, 떨이를 외치는 어시장 안
손수레 바퀴가 풀고 가는 길을 따라
햇살도 날개 펼치며
오금 무릎 세운다
꽃을 더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작가의 말///당선 전화를 받은 날은 정년퇴직 후 어렵게 재취업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어느 일터에서 일하다가 조금 여유가 생긴 날이었습니다.
제가 서 있었던 길 가장자리 공터엔 자라는 나무는 없었지만, 겨울 속 봄인 듯 민들레도 있었고 한 무더기 토끼풀 군락도 파릇하였습니다. 꽃송이를 몇 개씩 달고 피어나 있는 것이 경이롭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말이면 한파가 밀려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생명 있는 풀꽃의 운명이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꽃을 더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고 얼굴도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그때 군락의 한가운데서 네 잎 클로버가 제 눈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일부러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어 사진으로 담아 두었습니다.
몇 시간 뒤 제게 기적처럼 당선 소식이 휴대전화로 날아왔습니다. 언제나 낮은 곳에 몸을 두고 푸른 하늘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저의 꿈은 항상 늦게 이루어졌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물보라 치는 시조 쓰고 더 깊어지겠다
젊은 날엔 동인 활동을 하며 무작정 문학의 강가를 서성였고 서른 즈음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도 올랐었습니다만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 같았던 당선 소식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그 기억의 강조차 흘러내려 바닷속으로 사라져 갈 때쯤 만학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난 5년간 절치부심 시조 쓰기에 매진했고 4전 5기 끝에 마침내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박사과정 지도 교수셨던 김중일 교수님 그리고 이기호·조형래·안점옥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이라는 수행의 길에서 도반이자 항상 그 열정을 닮고 싶었던 김성신 시인, 함께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원우들, 저를 아는 모든 분께 당선 소감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이근배·서연정 심사위원께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물보라 치는 싱싱한 시조를 열심히 쓰고 더 깊어지겠다는 약속을 하며 신년 세배 올립니다.
시조, 잊힌 우리 문학의 뿌리를 찾아간다
서구 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문학에 있어서도 자유시는 번창한 방면 우리 고유의 시조는 옛것으로 치부되어 퇴색되어 갔습니다.
저 또한 그동안 유행을 따르듯이 자유시를 써왔습니다만 나이를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것인 시조를 공부하였고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시조는 잊힌 우리 문학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저는 단시조보다는 연시조를 선호하고 있으며 현대시조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3년 이내에 시조집과 새로운 시집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궁극엔 독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강성재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광주대 경찰법행정학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최향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