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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騷音)의 해석

기사입력 2023.12.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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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작가의 수필

     

    [크기변환]KakaoTalk_20231201_101856920.png

    ▲임병식작가

    어디서  닭 우는 소리를 ‘고귀위(高貴位)’라  써놓고 그 뜻을  '높이 오른다'라고 풀이해  놓은 걸  보고서,  일본사람들이 유리를 구분을 하기 위해  창유리는  그라스(grass),  컵 유리는  ‘구라스’라고 한다는 말을 문득 떠올렸다. 그 착상이 기발해서였다.      


    한데, 이처럼 소리도 보면 그런 구별법이 필요하지 않는가 한다.  왜냐하면 소리가 느낌으로 전달되어 올 때와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단순히  청각으로 울려오는 상태인데도  소리와 소음은 다르다. 즉 소리는 그냥 귀로 들려올 뿐이지만  소음은 그렇지 않고 신경을 자극한다. 


    소음의 한자(漢字)는 재미있다. 그  조합을 보면, '騷’자는 말(馬)과 벼룩(蚤)이  합쳐져 있다. 그러니 오죽  시끄러울 것인가.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는  여간 소란스러운 게 아니다.  예전에 지은 탓에   층간소음 차단이 안 되다 보니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는 물론  말소리도 여과 없이 들려온다. 거기다 방안에서는  무슨 공방(工房)을 차려놓았는지  무시로 드릴소리가 나고  망치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해서 행여나 낮잠을 자려거나,  글이라도 쓰는  때는 온 신경이 곤두서고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내고 있다. 이유는 내가 물리적으로 그를 제지 시킬 방도가  없을뿐 더러  다른 곳으로  이사 갈  형편도 못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형편에 용케  참아내는 나를 보고 혹자는  대견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어차피  ‘피하지 못하고 살 거라면 그냥 그 상태를 즐기자’고  다소  소극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을 뿐이다. 


    그와 나는 같은 동의  아파트를   한 층 나누어 사는  입장인데   야박하게 굴 것은 또  뭐냐고 여겨버린 점도 있다. 이만하면 도를 닦는 수준일까, 나태의 한 표본일까.


    황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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