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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열사의 정신을 이어가자는 물결이 전국 각지에서 일렁거렸다.
10대인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3•1절에 대한 지식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 정도이고 사실 그동안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삼일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희생된 사람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통을 감수 했던 선열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우리지역의 열사 윤형숙 열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3•1운동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유관순 열사가 있다.
유관순 열사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앞장서서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체포된 후 죽기직전까지도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때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놀랍게도 16살이었다. 나는 나와 같은 나이 유관순 열사가 대단하면서도 16살이면 아직은 부모님의 돌돔이 필요한 나이일 텐데 조국을 사랑한다는 죄로 처참한 희생을 당했다니 한편으로는 애잔하기까지 했다.
유관순 열사는 100주년 기념으로 건국훈장을 서훈 받았고 온 국민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우리 여수지역 출신인 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를 아는 사람은 드물어서 안타까웠다.
윤형숙 열사는 1919년 3월10일 전라남도 광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준비를 하였다.
당시 광주수피아여학교 재학 중이던 윤형숙은 광주교 천변에서 수백명의 관중을 지휘하며 만세를 외쳤다. 유관순 열사와 같은 학생의 신분인 여린 여학생 윤형숙은 팔이 잘리고 한쪽 눈을 잃는 끔찍한 일을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윤형숙열사는 독립이 된 후에도 불구가 된 몸으로 "외눈박이 선생님, 외팔이 선생님"이라 불리며 전도와 문명 퇴치운동을 계속하였다.
안타깝게도 윤형숙 열사는 1950년 9월 28일에 퇴각하던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윤형숙 열사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나 유족이 없어 현재는 여수 시청 앞 게시판에 걸려있다고 한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요즘세대 우리는 상상도 못 할일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 나서서 하셨으니 얼마나 위대한가!
윤형숙 열사를 비롯하여 희생된 모든 순국열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나라의 평화, 세계의 평화 물결로 이어져 국가, 종교, 문화의 벽을 넘어서길 바래본다.
김지웅 학생기자(구봉중학교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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