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일)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기원! 파랑새의 섬섬여수 이야기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기원! 파랑새의 섬섬여수 이야기

-적금수도의 황금어장터, 화정면(華井面) 『적금도(積金島)』

-적금수도의 황금어장터, 화정면(華井面) 『적금도(積金島)』 



[크기변환]KakaoTalk_20231025_154823713.png

▲사진출처: 여수시홈페이지

 

『적금도(積金島)』 는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며, 면적 0.78㎢, 해안선 길이 9km로 인구는 79세대 110여명이 살고 있다. 소재지인 백야도에서 서북쪽으로 18.5km 떨어져 있으며, 서북쪽 2.5km 지점에 고흥군, 동쪽 2km 지점에 둔병도, 남쪽 2km 지점에 낭도가 있다.


화정면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은 여수이지만 해협인 ‘적금수도(積金水道)’를 사이에 두고 주변에 무인도서인 소당도, 만월도, 응도, 독도, 연도와 무인등대(오도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머구섬이라 불리는 오도(梧島)가 있으며 고흥과 인접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금광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실패하였고, 일제 말기에는 일본 사람이 채광을 시도하여 금맥을 발견하였으나 많은 양은 없었으며, 지금도 채광한 굴만 요소요소에 남아 있다. 조선초기에는 ‘적포(赤浦)’ 또는 ‘적호(赤湖)’라고 전해진다. ‘적포(赤浦)’는 붉을 ‘적(赤)’자에 갯가 ‘포(浦)’자를 썼는데 섬 주변에 바위들이 노을에 물들어 붉은 색을 띠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여수군이 설립될 때 금광이 있다 하여 쌓을 ‘적(積)’자 쇠 ‘금(金)’자를 써서 현재 『적금도(積金島)』로 부르고 있다.


적금도는 『작기미섬』이 변한 이름이다. ‘작기미’는 마을의 동서쪽에 있는 ‘작(자갈)’밭이 잘 발달되어 지어진 이름이며, ‘기미’는 해안의 변두리인 후미진 곳을 이르는 해양지명이다.


섬의 지형은 남북으로 긴 형태를 갖추었고, 비교적 섬 전체가 낮고 평평한 섬으로 중앙은 지협부를 이룬다. 섬 전체가 낮은 구릉지를 이루어 섬 규모에 비해 경작지가 많은 편이다. 남북의 양 끝단이 동쪽으로 휘어 있어서 동쪽 해안은 전체가 만입을 이루며,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하부 해변에는 몽돌들이 쌓여 3곳의 만에 검은 색의 큰 몽돌해변이 있다. 


적금도는 지리적으로 ‘적금수도(積金水道)’를 기준점으로 생활권역이 여수시와 고흥군으로 분산되면서 양쪽 지역의 이점을 절충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으며, 여자만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이 형성되어 있다. 섬의 서남쪽은 암석해안이 발달해 있으며, 어패류 산란지인 양질의 넓은 갯벌을 기반으로 여자만의 관문에 위치한 만큼 풍부한 어족자원과 350여ha에 이르는 전복바지락 양식장, 각종 해조류 채취장 등, 황금어장의 어업권을 관리하기 위해서 전국 최초로 『어민주식회사』가 결성되어 풍족한 삶을 영위하는 풍요로운 섬이다.


적금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한 그루는 사장등에 300~400년으로 추정되는 고목나무 4그루와 함께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고흥 여도 만호의 전초 기지로써 병사들이 활을 쏘는 훈련장이었기 때문에 ‘시장등’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적금마을 남쪽 버덩(바위)에는 탑처럼 생긴 바위(자연석 돌탑)인 ‘탑고지’가 있다. 옛날 군량미 또는 세금으로 거두어 들인 곡식을 실은 배가 출발할 수 있는 물때를 맞추기 위해 이 탑에 매어 두었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치자 밧줄이 끊어지면서 머리 부분이 잘려 떨어져 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는 6층 정도의 높이였지만 지금은 탑의 몸체 모형만 남아 있다. 


적금도에는 지명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진다. 파래나 미역 등 해조류가 많이 생산되었던 ‘개미발’, 산모가 아이를 분만한 뒤 태와 불순물을 묻었던 ‘안태골(안투골),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묘를 쓰지 않고 시체를 가매장(초분)하여 둔 곳인 ’가장골‘, 검은 색깔의 자갈로 형성되어 있어 빛깔이 곱고 금빛이란 뜻의 자갈밭인 ‘몰락금’, 섬 전체가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보름달처럼 생겼다는 ‘만월도(약섬), 간조 시 육계사주로 연결되면 작은 집처럼 보이는 ’소당도‘, 날아다니는 매처럼 생긴 ’매도(응도)‘, 비가 오면 머리에 쓰는 삿갓, 갈미처럼 생긴 ’갈미오‘ 등 적금도 주민들의 생활상과 관련된 지명이 다양하게 유래되고 있다.


특히 가장골은 분묘를 하기 전에 임시적으로 시신을 안치하는 곳으로 대개 마을마다 공동묘지의 성격이나 적금의 가장골은 초분을 한 곳이다. 초분은 입관 후 출상한 뒤 관을 땅이나 평상 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서 1~3년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시신이 탈육되고 나면 뼈만 간추려 일반 장례법과 동일하게 묘에 이장하는 장례문화이다.


2016년 12월에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연결하는 팔영대교(1,340m 현수교)가 개통되었고, 2020년 2월에 여수시 화양면~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를 연결하는 연륙연도교가 개통되므로써 육지로의 접근성이 편해져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섬을 방문하고 있다. 

 

20231025_03.png


김영주 기자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