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9 (목)

[최정규 칼럼]길 위의 빵집, 공공과 상생을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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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칼럼]길 위의 빵집, 공공과 상생을 생각할 때

-관광지 중심 상권의 급성장, 그 이면에 가려진 공동체의 목소리

-관광지 중심 상권의 급성장, 그 이면에 가려진 공동체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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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여수일보편집위원) 


중앙동 이순신광장은 이 도시의 얼굴이다. 오래된 돌길 위에 시간의 흔적이 쌓였고, 그 위로 시민들의 삶과 추억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요즘 이 광장의 풍경이 낯설다. 관광객과 지역민이 함께 찾는 공간 한켠에서, 한 빵집을 중심으로 장사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핫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른 이 빵집 앞은 긴 줄과 포장 박스, 떠들썩한 인파로 가득하다.


물론 지역 상권이 활기를 띠는 모습은 반갑다. 침체됐던 골목이 다시 살아나고 외부 손님이 몰리는 현상은 지역경제 회복의 신호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질서의 훼손(public order disturbance)과 공동체의 균열(community fragmentation)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금 그 빵집 앞에는 인도를 넘어선 줄과 무단 주정차 차량, 곳곳에 쌓인 쓰레기들이 일상이 되었다. 관광객에게는 그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속 인기 여행지일지 몰라도,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의 삶은 침범당하고 있다.


도시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인도와 차도, 광장과 골목은 상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공의 공간(public space)은 함께 지키고 나눠야 할 자산이다. 단지 ‘잘 되는 가게’라는 이유로 공공질서가 무너지고, 시민의 불편이 방치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조짐이다. 빵집 하나의 흥행은 주변 상권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소비가 특정 업소에 쏠리며 인근 점포들은 상대적 침체를 겪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며 오랜 시간 터를 지켜온 상인들은 이탈 압박에 시달린다.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누가 떠밀려나고 있는가. 상업적 성공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로 인해 기존 공동체가 해체되고 주변이 버티기 어려워진다면, 이는 결코 건강한 성장이라 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자문해야 한다. 해당 상점은 과연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쓰레기 문제나 도로 점유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대응을 하고 있는가?

지역사회에 환원하거나 기여한 적은 있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 은 대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 기반 소상공인(local small business owners)일수록 지역과의 관계가 더 직접적이고, 책임도 분명하다.


쓰레기 수거비를 자발적으로 후원하거나, 청소년 장학금 기부, 지역 축제와 문화행사 후원 등 작지만 의미 있는 사회적 기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단순한 마케팅(marketing)을 넘어 지역과 같이 살아가는 상생(coexistence)의 방식이다.


이순신광장은 단지 상업 공간이 아닌, 지역의 역사와 시민의 삶이 어우러진 공공의 무대(public stage)이다. 특정 상점 하나가 그 풍경을 독점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모두의 장소가 아니다.


잘 되는 가게일수록 더 넓게 돌아보고, 더 많이 나눠야 한다.

지속 가능한 상권(sustainable commercial district)은 상생에서 비롯되며, 도시의 품격은 공공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respect for public value)에서 완성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도시를 만들고 있는가.

핫플레이스가 아닌, 함께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손님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최정규( 중앙동 주민자치회장/여수일보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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