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1 (금)
- "구국의 성지 여수, 선소에 거북선을 띄우자!"
> 윤문칠 (전)전라남도 민선 교육의원
우리나라 조선을 알리기 위해 첫 그림엽서(1910년) 1호를 만들 때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여수의 목조건물인 진남관과 거북선 함대의 사진을 넣어 발행했다.
그때만 해도 한양과 부산포는 외국인들이 모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 함대인 거북선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전술⋅과학적 가치가 입증된 거북선을 임진왜란 이전부터 진남관 아래에 있는 좌수영의 선소와 돌산 방답진 선소, 시전동 여천 앞바다에 위치한 선소(사적 제392호) 마을에서 신조하였다.
그래서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했던 진남관(국보 304호)이 있는 한려수도 여수를 호국충절의 고장이며 거북선의 고향이라 부른다.
평화롭던 조선시대에 왜군(1592. 04.13) 15만이 육해 병역을 이끌고 부산포에 침략하자 성주들은 당시 싸울 생각도 못 하고 도망을 해버렸다.
> 여수 진남관 전경
경상남도가 3일 만에 경상북도가 7일 만에 한양이 19일 만에 함락되고, 한양에 있던 왕과 대신들의 가족은 신의주 밑에 있는 의주로 도망갔던 치욕스럽고 아픈 역사가 있다.
그때 왜적이 들어오지 못한 땅은 바로 호남 좌우도(현 전라남북도) 뿐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일 년 전 여수에 부임한 이순신 장군!
당시 군사훈련소가 없었던 터라 직능별로 어부의 집안은 노군, 풀무(대장간)를 하던 집안은 병기 제작, 목수는 병선 제작으로 각각 그 기능에 따라 병사를 뽑았고 지시에 따라 거북선과 협선, 판옥선, 해골선을 만들었다.
예암산 아래 쇠철(봉산동)에 7개의 사철 소에 용광로를 지어 봉강동 사토를 삶고 쇳물을 녹여 거북선 갑판에 창살과 화살촉을 심고 화포 등을 만들고, 오동도의 시누대로 화살을 만들어 훈련하고 성을 쌓는 등 선조들은 모진 부역과 병무 의무를 다하며 수군 세습 제도에 묶여 차례로 징발되어 나라를 지켰다.
이순신 장군의 전적을 기린 진남관, 충민사와 통제이공수군대첩비(보물 571호)가 있고, 덕을 추모하는 타루비(보물 1288호), 장군의 어머니가 사셨던 송현마을과 백두대간 마지막 끝 지점 돌산 무술목 전투 등의 역사가 있는 곳이 많이 남아있다.
신비의 섬 사도의 거북바위를 착안하여 선소에서 거북선함을 진수하고 왜구의 침입을 막았던 역사 깊은 곳!
그래서 여수를 ‘거북선의 고향, 구국의 성지’라고 부른다. (즈윽히 생각하니 호남 여수는 나라의 보장성이라 만약에 호남 여수가 없었다면 국가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구국의 성지 여수는 각종 건설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관할 박물관 하나 없어 그 의미를 무색케 한다.
3여 통합(1998년)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박물관 건립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시립 박물관을 만들어보자고 많은 예산을 확보했었으나 몇몇 사람들의 정치에 밀려 전시유물 빈약, 시기상조 등으로 반납하며 취소함으로 무산 돼 버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도시에 작은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우리 시의 문화 수준을 본디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 군사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되는 여수 선소 수군기(군기고)
그런데 선소 유적지 일원에 오는 2024년까지 문체부 관광자원개발 사업으로 19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영상전시관과 탐방도 등을 갖춘 선소 테마 정원을 내년 5월에 착공하여 2024년 말에 완공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필자는 이 기회에 이순신광장의 거북선을 선소해상으로 이동하여 띄우고 수군(목수)들이 거북선을 신조할 때 사용했던 장비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건립하여 구국의 성지 여수의 선소를 새롭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거북선을 건조시키거나 대피처로 사용한 여수 선소 굴강
문화 유적 정비를 통한 시공간적 역사성을 회복하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가치 구현을 통해 지역사 연구 및 선소의 역사적 가치 구현뿐만 아니라 문화 관광 자원으로 거북선의 고향, 구국의 성지 4대 미향여수를 세계에 알려 "관광 대박의 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