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목)

우동식의 詩읽어 주는 남자 - 조영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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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동식의 詩읽어 주는 남자 - 조영심 시인

조영심시인의 '시월의 봄'

우동식의 詩읽어 주는 남자 - 조영심시인


시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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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심시인
 

시월에 사월의 봄을 건넌다는 너의 우주는 시월일가 사월일까

보랏빛 꽃송이들이 하늘에 분칠하는 지금

나는 언제나 섬이요 키 작은 봄풀도 서너 척 오엽송도 몇 척이라고 읊는 내 가슴은 시월의 섬일 것인가 섬의 사월일 것인가

제 꽃향기 한 모금 변변히 뿜지 못하고 어느 한 조각 다짐도 선선하지 못했던 시월의 시린 어깨 어딘가에서

고개 숙여 나를 내려 보던 너를 털고 먼 하늘로 눈빛 쏘아 도톰한 꽃심으로 말을 건네던 그 날을, 두고, 두고 사월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녕코

시월에 맞이하는 어느 쓸쓸한 봄날에

혼자 떨어져 오지게 견디던 내가 꽃받침 하나 없는 꽃으로 살다 순간, 꽃마저 사라지고 오로지 색깔 하나로만 기억될지라도

시월의 외진 봄날들도 꽃처럼 살다 보면  서로가 환한 꽃으로 번지지 않겠냐고 사월에 너를 떠 보고 알뜰한 시월에게 물어본다

시월 어디쯤에 사월은 살고 있나
 
 
 

//////詩詩한 이야기

존재론적 인식론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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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식 시인
 
 
나는 존재와 부재사이에 있다.
나는 있으나 나는 없고 나는 없으나 나는 있다.
시공을 뛰어 넘는 순간이다.  분명 사월의 봄인데 나는 시월의 가을 속에 있다.
순식간에 한 계절을 뛰어 넘어 시월의 봄을 맞은 거다. 나는 나인데 나와 함께 하는 우주는 시월일까 사월일까 이것은 존재론적 입장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자아 속에는 시월인데 타아 속에서는 사월이다.
나는 봄을 살고 있는가? 가을을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

나의 인식론은 언제나 섬이다.
정현종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라고 했지만 시인의 인식은 섬과 섬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섬으로 자신을 인식 한다. 
혼자 떨어져 오지게 견디던 그 날들은 시월의 섬이던지 섬의 사월일 것이다. 시적 화자의 삶은 어디서든지 섬이라고 느낀다. 제 꽃향기 한 모금 변변히 뿜지 못하고 어느 한조각 다짐도  선선하지 못했던 시월의 시린 어깨에서는 섬의 그늘이 보인다.
꽃받침 하나 없는 꽃으로 살다 꽃마져 사라지는 순간 색깔하나로 기억될 섬을 인식한다.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이곳에서 섬처럼 홀로 서 있는가? 가을을 사는 내가 누구의 봄꽃을 피우기 위해 시월 어디쯤에 사월을 살고 있는가?

인생을 사계절로 본다면 시인의 계절은 가을이 무르익어 갈 무렵이다. 그러나 봄꽃들을 피우고자 스스로 봄날 꽃받침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존재론적 인식론의 합일은 시월의 외진 봄날들도 꽃처럼 살다보면 서로가 환한 꽃으로 번지지않겠느냐고 사월의 청춘들에게 떠보고 시월의 나에게 답해 보는 것이다.

시월의 어디쯤에 사월을 살고 있는 시공을 초월한 존재론적 인식이다.
그래서 이 시의 묘미는 존재론적 인식론의 합일에 이르게 된다는 철학적 사유를 던진다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있다. 시월과 사월 사이에 꽃이 핀다.

누구나 가을이거나 겨울 계절 속에 존재 할지라도 인식론적으로 봄날이며 봄꽃과 향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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