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목)

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하병연 시인의 '고랑'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

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하병연 시인의 '고랑'

- 그의 시에는 흙 냄새가 난다

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
 
 
고랑

 
 

[크기변환]하병연.jpg
하병연 시인

 
그는 늘 고랑과 함께 살았다
 
어린 그가 처음 만든 고랑은
그의 밭을 만들어 준
논갈개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고랑 수는 많아졌다
 
담배 고랑 만들어  자식들 가르쳤고
배추고랑  만들어 밥상 차렸다
간혹 고추 고랑 깊게 파 용돈 만들기도 했다
 
그는 고랑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삽으로 만들기도 했고 괭이로도 만들었다
힘이 부치면 관리기로 했고 트랙터 잘하는 젊은이도 샀다
 
그러는 사이 그의 몸에도 고랑이 생겼다
처음에는 손에만 생기더니 이내 얼굴까지 번졌다
 
그는 늘 고랑과 함께 살다가 
마침내 그가 고랑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때
그의 일생 일대,
가장 높은 고랑 파기는 완성되었다 

///詩詩한 이야기
- 그의 시에는 흙 냄새가 난다
 

[크기변환]우동식시인.jpg

>우동식시인

하병연시인은 이번에 제 3시집 '길위의 핏줄'을 애지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의 시집은 ‘억척스럽고 악착(齷齪)스럽고 애착(愛着)스럽게’ 온 몸으로 땅의 신전을 숭배한 경건의 말씀들이다.
산청 사내 그의 시에는 흙냄새가 난다. ‘흙의 살맛’이 난다.
산골에 때 묻지 않는 순박한 흙이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어머니 모성 같은 지리산의 후덕한 능선이며, 그 산골 땅 속 깊이에서 솟아나는 투박하고 진솔하며 정감이 가는 치열한 생명의 언어이다. 그의 ‘흙은 부드러운 살결이고 허리춤이며 젖가슴이고 신의 말씀이며 숨결’이다. 그의 뼈와 살은 흙의 성분이고, 그의 정신은 땅속 깊은 곳에 뿌리 내리는 것이며 땅위에서 실핏줄 같은 길을 내고 있다.
 
‘땅과 땅이 비비며 등을 맞대며’, ‘논배미 같은 가슴에 벼가 자라고 보리가 자라’도록 물꼬를 내고, 그의 ‘밭에는 매실이 자라도록 잡초를 제거하고 가지치기’를 한다. 땅을 파고 땅을 일구며 땅의 소산물을 먹고 자란 ‘징그러운 땅 벌레 같은 삶’을 떠나보지만 시인의 천형(天刑) 같은 본성은 오히려 더 흙에 천착(穿鑿)하게 된다. ‘지독한 그의 시업(詩業)은 농사이고 시농(詩農)’이다. 농민신문으로 신춘을 하고 땅의 성분을 회복시키는 생태 비료박사의 연구실적도 어쩔 수 없는 그의 운명으로, 하늘농사 사람농사를 짓는 일이다.
 
‘우글거리는 마음속에 우글거리는 생의 잡풀들을 뽑아내는 과정’이 첫시집 <희생>2010, 시와 사람,의 농가월령가요, 24절기 노래이고, ‘여기가 끝이라 생각들 때 툭, 툭, 툭 매화 터지는’ <매화에서 매실로>2015, 문학의 전당 두번째 시집은 그 땅 깊숙이 ‘너에게 가려고 발을 들여 놓고 생의 길을 바로 잡아주는’ 매화나무 가지치기이며  웅크린 몸에서 발아하고 열반하는 작업이다.
 
이번 세 번째 시집<길 위에 핏줄들>에서도 그 땅에서는 ‘어머니의 무명저고리 냄새가 나고 눈물 냄새도 배어있으며’ ‘옹그리고 미치고 미쳐서, 헌 마을을 새 마을로 바꾸던 시절’ 찌들게 가난하였으나, 땅의 종교를 숭배 했던 선한 신자들의 경건한 삶의 노래다. 아버지는 교주요 어머니와 자식들은 신자들이다. 땅은 경전이고 땅의 소산물이 그들의 신령한 양식이다. 그 모습이 그 시대를 농촌에서 살았던 내 아버지요, 어머니요, 또 나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고향지역에서 함께 살아 온 필자도 그 앞에서 신자로서 무릎을 꿇게 된다. ‘고랑과 함께 살다가 가장 큰 고랑을 만들고’ 흙으로 부터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역정(歷程)이다. 

 ‘차(茶) 한 잔속에서도 아버지의 굵은 손, 어머니의 구부렁한 허리 지리산 골짝 산과 하늘과 땅이 녹아’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감히 하병연시인, 하병연 농학박사를 제대로 된 진토백이요, 농학시인, 농민시인, 육필시인 이라 칭하고 싶다.
 
 
우동식시인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