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목)

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 - 곽경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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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식의 詩 읽어 주는 남자 - 곽경자 시인

봄, 피다 - 곽경자

봄, 피다
 

우동식곽경자시인.jpg
곽경자 시인
 
 
 
햇살 좋은날
시 한편 주워보려고 금오도 비렁길로 나선다
저렇게 많은 시어들이 아름답게 널려있는데
나는 줍지 못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누군가 먼저 다 주워갔거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있거나
너무 멀리 있어 줍지 못하거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거나
발길마다 떨어져 있는 시어들을
나는 하나도 줍지 못 한다
다가가면 바람이 훅 날려 버린다거나
바닷가에 다다르면 파도가 삼켜 버린다거나
하늘을 보면 햇살이 가려 버린다거나
먼 산을 보면 안개가 자욱하다거나
다 보이지도 다 들리지도 않아서
그래서 나는 시를 줍지 못한다
바람과 구름과 햇살과 파도와 먼 산과
큰 나무와 벌들과 참새와 동박새와 까치와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날마다 아름답게 꾸며가는
이 섬에 있는 모든 자연 앞에
내가 주우려 하는 시 한편이라도 주울 수 있게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겠다
조금 있으면 봄이 필 것이니
멧돼지 똥에서도 튤립이 필 것이니
근간도 모르는 그놈의 똥에서도 봄은 필 것이니
 
 
 ///詩詩한 이야기

 

1.우동식 시읽어주는 남자.jpg

우동식 시인
 
 
- 그놈의 똥에서도 봄은 필것이니
 
필자의 시 선생님이시기도 하고 문학과 인생의 멘토 이신 신병은 시인에게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정 원우들 중 시 한편을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시는 곽경자 시인의 시 ‘봄, 피다’이다.

이 시 한편을 받아 읽는데 금오도 해녀가 갓 잡아 올린 멍게, 해삼, 굴 같은 신선함을 느낀다. 금오도 우학리 포구의 해풍과 햇살을 받고 자란 봄똥의 풋풋함과 고소함 같은 맛이다. 탈색되지 않은 자연의 빛깔과 글 속에 들어있는 맛의 색깔이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시를 창작하는 나에게 죽비로 내려치며 ‘시를 이렇게 줍는 것이’라고 일갈 하시는 것 같다. 시가 나에게로 마구 쳐들어 온 느낌이 이런 것 이겠구나 싶다. 곽경자 시인은 여수 금오도 우학리에서 ‘별밤지기펜션’을 운영하시며 詩처럼 사신다. 문창반에서 그분과 함께 동문수학 한 적이 있으며 얼마 전 비렁길을 다녀오면서 그분의 펜션에서 차 한잔을 얻어 마신 적이 있다. 시인의 동선(動線)은 수채화이고 울림 있는 메시지이며 느림의 미학이다.

 
원도(原道)에서 유협은 문장의 출발은 자연에 있고 문학창작 근본원리는 자연의 도에 있다고 했는데  마치 그 교본을 보는 듯하다. 언어의 씨를 뿌리고 별빛으로 발아시키며 해풍으로 길러 낸 이 시, 언어의 맛은 침착(沈着)에 이르게 된다. 침착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편안한 사색 속에서 사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 구속된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가는 것, 자유로운 상황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다. 침착의 미학은 끝없이 아래로 침잠(沈潛)하면서도 생각의 꼬투리를 놓치지 않는 것이고 그 사색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말한다.
 
‘멧돼지 똥에서도 튤립이 필 것이니’ ‘근간도 모르는 그놈의 똥에서도 봄은 필 것이니’ 무슨 시어가 더 필요하고 무슨 해묵은 언어로 설명이 필요할까? 생성과 소멸, 죽음과 부활, 윤회 같은 사상, 우주생명을 지탱하는 순환 고리로 연결 된 완벽한 질서와 구조가 근간도 모르는 그 똥에서 주워 오다니 참으로 자연 친화와 깊은 사색 속에서 오는 번쩍이는 발견이다. 침착은 바로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는 관조성의 미학이다. 물러나 있으면서 대상을 무겁게 응시하는 부동(不動)의 미학이다.
 
아마도 그녀가 운영하는 펜션 앞 너른 꽃밭 별빛이 내리는 밤에  멧돼지가 출몰했을 것이다. 겨울나기가 힘든 배고픈 돼지가 화단을 마구 파 헤쳤을 것이다. 못 본 척하고 그냥 두었을 것이다. 아니 그녀의 성품으로는 다음 날에는 고구마 몇 바가지를 밖에다 고스란히 두었을 것이다. 멧돼지는 또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겁지겁 화단을 습격하여 튤립 알뿌리를 마구 캐 먹었을 것이고 이곳 화단 아무데나 똥 무더기를 내지르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 똥 무더기에서 뾰족뾰족 새싹이 나고 꽃대를 세우더니 튤립 그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녀의 안테나는 그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수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날마다 아름답게 꾸며가는 이 섬에 있는 모든 자연 앞에’ 시인은 자연이 되어가고 모든 자연은 그녀가 불러주는 이름이 되고 의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별밤지기 펜션은 별들도 푹 주무시고 가는 펜션이다. 시인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과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별 손님들과 마주하며 별별스러운 이야기를 주워 담을 것이다.
봄은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눈빛과 마음에서 피어남을 느낀다. 
그놈의 똥에서도 봄은 필 것이니, 그대들의 봄도,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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