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8 (목)
해빙
>이생용 시인
두 귀를 곧추세운
눈 덮인 마이산은 적막이다
귀 속 가득 눈 차올라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을 터
어느 날은 귀 뒤쪽에서 달이 뜨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귀 앞쪽에서 태양이 떠올라
해종일 귀속을 지피지만
아프도록 눈은 녹지 않았다
바람도 떡갈나무 가지에 얼어있었다
멀리 이어도에서
훈풍주의보가 타전되던 날
녹지 않은 눈 위에
복수초가 노란 눈망울을 터뜨렸다
두 귀가 펑 뚫렸다
///詩詩한 이야기
>우동식시인
-뚫어! 뚫어! 귀 뚫어!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의 풍경이다.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다.
화자는 눈 내린 그 산을 오르고 있는 것 같다. 거대한 두 암석에도 은수사, 금당사 사찰에도 기슭의 탑사에도 눈으로 덮였다. 소복소복 쌓인 눈과 나무에 얼어붙은 상고대는 설국(雪國)이다.
이 신비스러운 나라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 소리 하나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寂寞江山 )이다.
살을 여미 듯 한 차가움이 정신을 오싹하게 하지만 귀는 쫑긋하게 세우고 있다.
신라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 나귀의 귀처럼 커졌다고 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설화는 아마도 임금은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저 눈의 나라 임금님은 두 귀를 기지국처럼 세우고 세상 모든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겨울 마이산은 귀를 곧추 세웠으나 귀 속까지 눈이 가득하고 꽁꽁 얼어붙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저 커다란 귀로 세미한 소리까지 듣고자 하나 들리지 않으니 들을 수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적막을 넘어 절망이다. 달이 뜨고 해가 솟아 해 종일 귀속을 지피지만 아프도록 눈은 녹지 않는다.
저렇게 크게 우뚝 솟고 견고하지만 바위를 마주한 것 같은 귀를 보면서시적인 화자와 우리는 열린 귀 뚫린 귀를 간절히 염원하게 된다.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했고 체 게바라는 혁명의전장에서도 고전과 선배의 시를 읽고 베꼈다.
그의 배낭 속에서는 항상 괴테, 보들레르, 토스토예프스키, 네루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레닌 등의 책들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전장에서 전사한 그의 유품에는 지도와 두 권의 일기 공책 한 권이 있었는데 네루다 등 4명의 시 69편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귀를 순하게 만들게 위해 서다. 귀를 예민하게 위해서다. 귀가 밝아야 행동이 밝다.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통하고 행동이 통하는 통,통,통(通,通,通)은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통섭(統攝)으로부터 시작 된다.
눈을 뚫고 겨울을 뚫고 봄의 전령사로 피는 복수초는 복과 장수를 가져오는 희망과 행복의 꽃인 것처럼 귀가 열리는 것 펑 뚫리는 것 그게 곧 해빙(解氷)이다.
여야관계, 남북관계, 한미관계, 한일관계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관계가 꽁꽁 얼어붙는 것은 귀를 닫는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다는 것이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서로서로 귀를 열어놓고 잘 들어야 겠다. 멀리 이어도에서부터 훈풍주의보가 타전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두 귀를 안테나처럼 쫑긋 세우고 수신되는 전파를 잘 감지해야겠다.
마이산이 두 귀를 탈 탈 털고 있다.
쌓인 눈 속을 헤집고 달려 온 가슴 뛰게 하는 신비스러운 식물 복수초 꽃망울이 펑하고 터지는 소리 들렸기 때문이다. 겨울 마이산을 오르면 내 안의 소리를 듣게 되고 타자의 소리를 듣게 된다. 얼었던 마음이 녹고 개안(開眼)이요 개심(開心)을 하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경구가 또 가슴에 새겨진다. 이 모든 게 시인에게는 ‘해빙’이다.
뚫어! 뚫어 ! 귀 뚫어 ! 환청이 자꾸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