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우리지역 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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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지역 ESG

-한려새마을금고 ESG 운영위원장, 법무사 심정현

-한려새마을금고 ESG 운영위원장, 법무사 심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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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현 법무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연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한 해가 되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인고의 세월이 되었을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밖을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 두 개의 참혹한 군사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미·중 간에는 세계 미래패권을 둘러싸고 끝모를 경제전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이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 파리협약으로 정한 지구 온도 1.5℃ 제한 목표가 내년에 깨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수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파산 직전에 내몰리고 있고, 갈 길 잃은 청년들의 허무와 고독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과 안전을 돌보아야 할 정부는 숱한 생명 참사에 이어 부산 엑스포 유치의 참담한 실패로 국민에게 좌절감만을 안기고, 미국에 경도되어 세상의 반쯤을 잃어버리고, 침략자 일본에 굴종하는 반민족정서적 정치 행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추락하고, 우리나라 출산율은 매년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2.재조산하(再造山河) ! (2-1)


 김지영 씨가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였다. 그전부터 징후가 있긴 하였으나 시댁 식구들과 함께한 밥상머리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무슨 말 끝에 갑자기 친정어머니로 빙의하여, 시어머니에게“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놀라 호통치는 시아버지에게는 “사돈어른, 그 집만 가족인가요? 우리 집도 가족이에요. 그 집 따님이 집에 왔으면 우리 딸은 친정으로 보내 주셔야죠.”

              (…)               

 김지영 씨는 10년 만에 진로를 고민했다. 10년 전에는 적성과 흥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했다. 최우선 조건은 지원이를 최대한 자신이 돌볼 수 있을 것,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어린이집에만 보내고도 일할 수 있을 것.

 어느 날 지원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반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가 마트 입구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평일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급 5600원, 주부 환영⌟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다는 강좌도 들어 보곤 하였으나 세상에 자신을 기다려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만을 확인한 채 뒤늦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갔지만 이미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일을 시작한 후였다.

 김지영 씨는 10년 전,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수십 차례 원서를 쓴 끝에 어느 홍보대행사에 취직하였다. 눈높이를 낮추고 또 낮추어 겨우 얻은 직장이었다. 아침에 상사들 커피타는 것부터 시작하였고, 클라이언트들과의 회식자리에서는 부장이 시키는 대로 클라이언트 옆자리에 앉아 따라주는 맥주를 마시고 19금 농담도 들어주어야 했다. 전쟁 같은 나날 속에서도 정대현 씨를 만나 결혼하고 서울 변두리 24평 전세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3년 후 지원이를 낳고 지원이가 어린이집 다닐 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세상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가을이 완연한 어느 날, 지원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 햇볕도 쐴 겸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근처 공원에 갔다. 바로 옆 벤치에는 서른 전후로 보이는 직장인들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왠지 그들이 부러웠다. 그때 한 남자가 김지영 씨를 힐끗 보더니 일행에게 뭔가 말하는데 간간이 들리는 말“나도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 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이후 김지영 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이기도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여 그 사람이 되었다.(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최근 우리 사회는 세대, 계층, 젠더, 지역사회, 정치세력 간의 갈등이 점점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위기까지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갈등과 위기는 단연코 유례없는 압축성장과 그로 인한 후유증입니다.

 더글러스 맥아더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가 재건하는 데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우리나라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재건 따위를 뛰어넘어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소득)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었으며 2020년 세계은행 기준 1인당 GNI(국내 총소득)은 약 43,000달러로서 프랑스‧영국에 이어 24위이며, 일본(26위), 이탈리아(27위)를 앞서고 있었습니다.

 195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로 아프리카 가나(208달러)보다 낮았습니다. 1994년 1만 달러를 달성하고, 2006년 2만 달러, 2019년 3만 달러를 돌파하였습니다. 무려 500배가 상승한 것입니다. 사람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이 땅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봄날은 갔습니다. 고성장의 시대는 추억일 뿐이고 안타깝지만 이제 뺏고 빼앗기는 저성장의 시대로 진입하였습니다. 2023년 11월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들은 1.4%로 전망하고 있고, 앞으로 2-3년간은 저성장, 고금리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세계 10위권 경제가 올해 13위권으로 두 단계나 하락하였다고 하는데, 앞으로 다시 힘을 내어 복귀할지 더 하락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초저출산율과 초고령화 속도, 자살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집중하고,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압축성장의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소득 불평등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버렸고, MZ 세대는 금수저‧흙수저론으로 자신의 무기력과 목표의식 부재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MZ 세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여전히‘나 때는’을 외치고 있고, MZ 세대는‘N 포’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세대갈등 속에서 젠더갈등까지 가세하여 우리 겨레가 서로 아군과 적군으로 극도로 분열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정치판에서는 ‘2대 남’‘세대 포위론’같은 반사회적‧반민주적인 득표 전략까지 나타났습니다. 뜯어 먹고 먹히는 저성장 시대 우리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소설 속 김지영 씨는 82년생이니까 MZ 세대의 맏이고, 큰 누나쯤 되는 여성입니다.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두려운 장벽 안으로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파이를 앞에 두고 서로 다투어야 하는 동 세대들로부터 받는 상처 또한 나약한 한 인간이 감수하기에는 너무 깊습니다. 소설은 그 세대 그들의 염원과 좌절에 관한 슬픈 독백입니다.


 그러나 김지영 씨를 MZ 세대와 동 세대의 여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김지영 씨는 그래도 대학 졸업반 때 취업을 하였고, 회식 때 술 시중도 하였으며, 명절에는 2일 전부터 시댁에 내려가 명절 음식을 도왔습니다. 적당한 때 혼인하고, 적당한 때 출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수많은 92년생 김지영 씨, 2002년생 김지영 씨는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다음 회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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