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2 (목)

곽동현 칼럼 - 選擇과 責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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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현 칼럼 - 選擇과 責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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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동현 (경영학 박사)


인간의 본질은 태어나면서부터(Birth) 죽는 날까지(Death) 연속된 선택(Choice)에 있다고 사르트르가 말했다.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운명적 선택으로 힘겨운 롤러코스터의 인생을 살아간다. 예를 들어, 자장면/짬뽕, 로또 자동/수동, 회식 /운동, 주식/채권, 태국/제주도, 진보/보수 등 일상생활에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갈등요소이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선택엔 꼭 후회가 따른다.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지만 결과는 늘 오답의 연속이기에 내 탓, 남 탓 일삼으며 순간 내적 갈등을 느낀다. 하지만 어쩌면 그 오답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며 새로운 선택의 길을 또 찾게 되는 환경에 접하게 된다. 즉 선택에는 반드시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결과에 승복할 수 밖에 없는 ”연속된 선택의 삶“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안타까운 일상의 선택이 또 있다. 대한민국은 유난히 선거 현수막이 난무하다시피한 나라이다. 그다지 큰 관심도 없는데 선거 시즌만 되면 죄 없는 시민들은 가려진 신호등을 찾으려 원치 않게 그 원초적인 현수막을 보게 된다. 국민의 의무라 하니 나름 원치 않는 공해를 인정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난리를 통해 태어난 자들이 있다. 바로 ”위정자“들이다. 국민들은 그들에게 무한한 책임을 보증으로 현수막의 주인공을 선택한 것이다. 국민 스스로가 기회비용을 지게 되는 셈이다. 수많은 현수막을 지켜보았던 국민들은 그래도 자신의 선택에 적잖은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위정자들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방법만 바꾸려 한다. 국민을 위한다며 개인의 입지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꼴상이 지금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 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가로등에 억지로 묶여 춤췄던 저 현수막들의 주인공들은 국민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눈 뜨면서 최소 열 번 이상 외쳐야 할 문구일 것이다.

 

 후회조차 생각할 수 없는 선택도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말살된 선택의 자유를 보게 된다.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앞둔 선택은 그들에겐 심지어 잘못된 선택조차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소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가치인 제한된 선택마저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일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생명줄을 하루하루 이어갈 뿐이다. 

 과연 우린 어떠하였는가? 지난 2년여전 0.7%의 선택의 옳고 그름을 이제사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당선자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력으로 우리(백성)의 삶의 가치와 존엄성을 해치는 당위성을 부여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대다수 국민들이 보았다. 독재라는 과거의 성공모델(?)을 집착하여 이전 방식을 고집하다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 시스템마저도 붕괴되는 현상을 국민들이 똑똑히 묵도하였다. 그들이 선택한 과거 성공모델의 패착의 결과를 우리 국민들은 역사를 통해 보증하고 있다. 어찌 지우고 싶은 기억인 국민이 국민을 해하는 동족상잔(dog-eat-dog)의 역사적 비극을 또다시 연출한단 말인가?


위대한 시민들이여!

이제는 촛불집회라 하지 말자. 우린 아무런 선택도, 비굴한 선택도, 위대한 선택도 하지 않았다. 권력을 위해 발광한 자들을 향한 후회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엄동설한 우리들은 동지(同志)로 대동(大同)하여 만났을 뿐이다. 극소수의 권력자들의 만행에 희생된 죄없는 시민들의 원한의 곡성을 또다시 들어서는 아니 되기에 작금 시국의 형상이 엄동설한의 한파에 우리에게 ”울분의 합창“이란 선택을 부여했을 뿐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그들로부터 충분히 상처 받았고 동학혁명, 부마항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을 거치며 오로지 민주, 민중을 위해 남모를 고통을 이겨내며 ”불의에 항거“라는 혁명적 내성을 쌓아온 것이다. 이제는 제대로 그들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겐 위대한 선택이 지금 시작일 뿐이다. 충신과 간신은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시민들이여..간신을 솎아 낼 수 있는 선택을 하자.

 

 자신의 입지에 집착한 위정자들이여!

정신적 자아가 무너진 사람은 결국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일 수 밖에 없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이고 국민들에게 져야할 막중한 책임인 것을 잊지 않길 당부한다.


 아마 하루가 일주일 보다 더 길게 느끼고 있을 용산의 한 몽환가(夢幻家)에게 전하고 싶다. 상륙하자마자 배를 불태워 둘 중 하나의 선택한다면...  즉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만을 남겨 놓은 장군처럼 과감한 선택을 한다면... 부디 정의롭게 하기 바란다. 선택이 늦을수록 시간 감각을 잃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 씁쓸하게도 책임의 몫은 또 국민에게 돌아가는가 보다.  0.7% 선택에 대한 가혹한 책임인 것 같다. 올바른 선택과 타당한 책임이 유기공존하는 시대를 꿈꿔본다.


/곽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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