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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양중, 새나클래식과 함께 교내 음악회 개최-여수 여양중, 새나클래식과 함께 연주는 교과서 음악여행을 떠나다 여수 여양중학교(교장 박종인)는 예마루에서 7월 13일 오전 ‘2021. 새나클래식과 함께 연주하는 교과서 음악여행’을 떠나 눈길을 모았다. 여양중은 평소 방과후시간에 갈고 닦은 바이올린 실력을 새나클래식 단원과 랑데부로 공연하며 코로나19로 지쳐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다.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장난감 교향곡,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The Entertainer, 산타루치아, How Far I’ll go, 섬 집 아기, Summer, 오 샹젤리제, 오빠 생각, 학교 가는 길’ 등 익숙한 교과서 음악을 위주로 선곡해 축제 분위기를 제공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 4중주로 구성된 ‘새나클래식’ 단원은 전라남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각급 학교를 순회하며 다채로운 연주를 선보이며 학생들의 스트레스지수를 낮춰줬으며, 여양중 바이올린 단원과 함께 공연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행사를 개최한 이지은 교사는 “코로나 19로 인해 연주 활동을 하지 못하던 중 이번 ‘2021. 새나클래식과 함께 연주하는 교과서 음악여행’를 계획했다. 매주 방과후시간에 익혔던 경험을 전교생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모든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주에 참여했던 김승민 학생은 “오랜만에 무대에서 공연하니 떨리고 설렜다. 그동안 연습했던 곡을 친구들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고 말했다. 박종인 교장은 “오전부터 음악 여행을 떠나니 기분이 좋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바이올린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기 자랑을 할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해 학생들의 재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김광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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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중, 5.18정신을 가슴에 새기다-여수 여양중 전교생이 참여하여 5.18역사기행 후 창작신문을 발행하다 여수 여양중학교(교장 박종인)가 5.18역사기행 후 창작신문을 발행하여 주변 학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여양중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이하여 5월부터 6월까지 다양한 기념행사를 추진한 후 ‘5.18역사창작신문만들기대회’를 개최하였다고 전했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5월 18일 당일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5·18을 소재로 영화(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를 감상하였으며, 계기 교육 자료인 ‘5·18 동영상, 또 다른 기억 5.18 이야기’를 학생들과 공유하며 그날의 아픔을 간접 체험했다. 6월 11일에는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전교생이 망월동 5.18국립묘지 탐방 후 여양중 학생회는 5.18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미에서 5.18국립묘지 탐방후 ‘5.18역사신문창작대회’를 개최하여 5월 그날을 새롭게 해석하였으며 교내 전시를 통해 정의, 인권, 자유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전교생이 조별로 역사신문창작대회에 참여했는데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여러 선생님을 감짝 놀라게 했다. 이도현 학생(3학년)은 “학생회 주관으로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5.18에 대하여 많을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에서는 5.18이 일어나기 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신군부의 정권찬탈의 흑심을 조사하였으며 고립된 상황에서도 주먹밥을 나누며 공동체 정신을 모여준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신문에 담아 역사신문을 완성하였다”고 말했다. 안채영 학생(2학년)은 “삼촌이 5.18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어서 저 또한 깨어있는 학생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번 역사신문을 만드는데 적극 참여하여 그날의 아픔을 신문으로 완성하였는데 역사퀴즈만들기, 산자의 아픔, 대동사회 등등 새로운 시각에서 신문을 창작하여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수현 학생(1학년)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말을 곱씹으며 5.18신문을 만들었다. 무궁화와 비둘기를 그리며 자유와 평화를 강조했으며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한 잘못된 언어를 올바르게 정정하기 위하여 제3공화국의 통치 및 5공화국의 탄생과정을 신문에 담았다”고 밝혔다. 역사창작신문만들기대회를 개최한 김광호(교육정보부장)는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다. 시험을 보기 위하여 배운 역사교육은 이젠 사라져야 한다. 자국 군인이 자국민을 죽이고도 반성도 없이 호의호식하는 이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묻고 싶다”며 “학생들과 이번 역사창작신문만들기대회를 끝마치고 학생들과 역사와 교육의 중요성을 심도 깊게 이야기하며 더 정의롭고 공정사회를 만드는데 앞장 서겠다”라고 말했다. 여양중 박종인 교장은 “이번 역사창작신문만들기대회는 정말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이런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공부를 안내할 것이며 대장부를 배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겠다”라고 전했다. 여양중, 5.18 영령들을 참배하고 역사에게 질문하다. 여양중은 6월 초에 국립 5.18민주묘지를 다녀왔다.‘참역사가 무엇인지, 참삶이 어떤 것인지, 참나는 누구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날의 아픔을 살펴보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행복이 근원지가 아주 가까운 광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양중에게 역사기행은 진중한 하루였다. 참역사의 모습을 대면하면서,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5.18 영령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양중은 5.18에 대하여 마침내 가슴속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뜻깊은 하루를 선물 받았다 (김00) 친구들과 인솔 선생님과 함께 광주의 국립 5.18 민주묘지를 다녀왔습니다. 처음에 안내해주시던 분께서 저희에게 민주화운동에 대해 물어보았을때 대답도 못 하던 제가 너무 창피했습니다. 민주화운동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 분들이 계셨기에 저희가 이 세상 속에서 당당히 살 수 있는 거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안내를 받으며 안장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박현숙이라는 학생이 제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19살의 나이로 시신을 직접 닦으며 시신 담당을 맡던 박현숙 학생은 여학생의 몸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박현숙 학생은 21일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관이 부족해지자 관을 구하기 위해 미니버스 한 대를 대여하여 화순으로 가던 중에 군의 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박현숙 학생은 두부, 흉부, 하복부, 전신 총상으로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여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박현숙 학생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감동을 받았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번 역사탐방은 저에게 정말 뜻깊은 하루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날 하루를 통해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그 역사로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과 그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오늘 나의 하루가 어땠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에 정말 감사하며 이 마음으로 그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바른 정치를 아는가? (이00) 국립 5.18 민주묘지에 방문해서 관련된 설명을 들으며 그곳의 주변 풍경까지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 넓은 곳에 안치되어계신 분들이 모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신 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참 감사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5.18뿐만 아니라 근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 설명까지 듣고 나니 내가 태어나기 이전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우리 민족의 아픔이 있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영화관처럼 생긴 영상관에 들어가서 5.18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우리나라의 감춰진 역사에 대해 직접 마주하게 되니 독재정치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지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듯이 떠올리면 끔찍하고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뼈아픈 순간들이지만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이러한 비극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우리 역사를 더 잘 알게 해주고 기억하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아 뜻 깊었고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게 묻고 싶다 (김00) 참배행사를 마치고 안내 해설사분의 말씀을 들으며 당시의 시대상황을 더 자세히 알아가고 묘지에 묻혀계신 분들의 얼굴을 보며 그 분들의 사연을 하나씩 들어가며 나의 마음은 처음과는 정말 다르게 무거워지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차갔다. 그렇게 역사기행 당시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에 돌아와 5. 18 관련 영화인 ‘화려한 휴가’를 보며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 관계상 2번에 걸쳐서 보아야만 했던 영화였지만 그 두 번을 나누어 보는 데에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눈물은 단지 영화가 감동스럽고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민 한 명 한 명이 총에 맞아서, 무차별적으로 휘둘리는 곤봉에 맞아 죽을 때마다 지금까지 더 깊이 이해하고 기억해 드리지 못한 나의 행동들이 죄송스럽게 생각되었다. 우리가 진정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그리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너무나 처참하고 암담했던 그 시기에 불가능을 알면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았던 그 분들의 희생과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이렇게 지켜보지 말고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찾아갈 수 있도록 나아가자고 외치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고, 그렇다면 그 민족에게는 똑같은 과거가 되풀이 될 뿐이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잊은 민족이 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 (최00)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 했던가! 글로 배울 수 있는 것 외에 많은걸 느낄 수 있었던 역사탐방이었던 것 같다. 5 .18민주화 운동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큼 조심스럽고,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그런 역사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국립5 .18묘지에 도착해서 다소 근엄한 분위기의 민주의 문을 통과하니 오랜만에 주말에 먼 곳으로 탐방을 오게 되어 들뜬 마음도 조금 엄숙해 지는 듯 했다. 민주의 문을 통과하니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우리를 맞이했고 넓지만 정숙한 민주광장을 지나 참배광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참배의식을 가졌다. 참배광장에 서서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시설들을 보고 묵념을 올리니 복잡하면서도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참배의식이 끝난 뒤에는 그 곳 직원들과 국립묘지 곳곳을 돌아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추모관안에는 민주화운동 당시에 사용된 총칼, 몽둥이 이외의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특히 그 시인분의 5살 아들은 자라서 이 곳 국립5.18묘지에서 일하신다고 하셔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돌아와서 우리는 5.18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직원들께서 설명해주신 세밀한 부분들과 잘 맞아서 이해가 잘 되었다. 내가 근현대사에 특히 더 흥미가 가는 이유는 다른 역사에 비해 비교적 나와 가깝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인데, 5.18민주화운동은 내가 태어나기 겨우 20년 전이고 내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참여했었다는 점에서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점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 것 같다. 나도 역사에게 한마디하고프다 (박00) 과연 아는 것이 많고 재력이 좋고 권력이 좋은 것이 진정한 지배층이고 지식인의 모습일까? 가진 것이 없고 힘도 부족하지만 부조리한 정부에 맞서 우리 평범한 시민들도 생각이 있고 민주화를 원하고 있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 당시 광주의 고등학생, 대학생 더불어 광주시민들이야말로 본받아야할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 어린 나이에 한 일보다는 할 일이 더 많은 나이, 혹은 가정이라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두고 온 분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도청에서 너무나 무섭고 힘들지만 이겨내 주셨기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박00) 노래를 들으며 국립묘지에 발을 들여놓자 처음 보였던 것은 중간에 타원형의 형상을 감싼 탑이었다. 처음엔 저게 무슨 뜻일까,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이것 또한 설명을 들어 알게 되었다. 타원형의 형상은 바로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새 생명으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만 같았다. 본격적인 설명을 듣자 정말 속상하고 슬펐다. 광주 시민들이 우리나라의 민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해주신 것에 감사했다. (이00) 국립묘지를 다니는 동안 많은 분들을 얼굴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도 많았고, 아빠, 엄마나이대의 분들도 많이 보았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국가 간의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총을 맞고, 곤봉으로 맞아서 죽을 수가 있는가. 우리나라를, 우리 국민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군인이 국민을 때리고 국민의 주권을 빼앗고, 국민을 죽일 수가 있냐는 것이다. 참 가슴 아픈 하루였고 앞으로 절대 이런 비극이 없길 소망한다. (김00) 해설사님의 설명중 윤상원 열사의 사연은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시민군의 대변인이었다고 한다. 윤상원 열사는 정말 마음에 깊이 남을 말을 남기셨는데, ‘비록 지금은 우리가 패배하지만, 미래에는 승리자로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 5.18 민주화 운동은 실패했지만, 정말로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승리자로 기억하고 있다. 오늘 내가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도 다 5월 영령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고개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최00)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5.18영령들을 참배했다. 영화<화려한 휴가>의 이준기처럼 친구가 죽거나, 김상경처럼 가족이 죽었다면 온 힘을 다해 싸웠을 것 같다.‘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고 한다. 우리가 이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역사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00) 역사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점으로 보아 역사란 그림자 같다. 같은 그림자라도 빛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고 모양이 달라지면서 변화한다. 또 빛이 나의 머리 위에 있을 때 우리는 그림자를 볼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너무나 뼈아픈 현대사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00) 5.18과 관련된 말이 나오면 희생자들의 희생정신이 떠오르게 되고 마음이 정숙해지며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장한 나를 볼 수 있었다. 미래사회에서 나는 이처럼 아픈 역사들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며 그 아픈 역사를 자양분 삼아 더 큰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자 한다. (박00)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런 게 나는 진정한 공부라 생각하고 우리나라 국민 한 명 한 명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정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낀다면 현재, 과거 보다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최00) 현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또 다시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자신의 꼭두각시처럼 지휘하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을 찾아 볼 수도 없고,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진정 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목숨까지 내어놓고 그토록 이루어 내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답이 맞느냐는 말이다. -5.18역사기행을 마치며 이번 5.18역사기행을 기획한 김광호 교육정보부장은 다음과 같이 학생들에게 통 큰 삶을 들려주며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이젠 너희에겐 공부할 목표가 생겼다. 많은 기성세대가 여타의 이유로 소아적 삶을 살다보니, 이렇게 아픈 역사의 상흔을 남기지 않았느냐? 너희와 너희의 핏줄이 또다시 이런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더 큰 공부를 해야 한다. 큰 공부를 해서 대아적인 삶을 설계하며 나를 완성해갔을 때 사회는 물론이고 나또한 행복할 수 있다” 더불어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의 목소리도 들려주었다.“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담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역사 기행이었다. 태산보다 무거운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새털보다 가벼운 삶을 선택할 것인가는 이젠 후학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김광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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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혹 이런 사람이 나쁜 어른이 아닐까요? 임은 좋은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김광호 칼럼니스트 어른의 말과 행동은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린 이른바 인공지능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점에 예기 '곡례"의 가르침을 꺼낸다는 것이 고개를 절로 흔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기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바로 자녀 교육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자식들에게는 항상 속이지 않는 것을 보이며, 바른 방향을 향해 서며,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도록 가르친다." 부모 즉 어른에게 안내하는 자녀 교육에 대한 지침이다. 교육이란 다름이 아닌 말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평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부모가 아이에게 '보이는 것, 행동하는 것, 듣는 것'의 삶을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먼저 항상 속이지 않는 것 즉 보이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아이에게 삶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가르치지 말고 실제 삶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행동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엔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어른이 많다. 흔히 착하고 정직한 삶을 밥상머리에서 말하면서 집밖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 한두 명이 아니다. 말은 볼 수 없지만 행동은 볼 수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했던 말을 자신이 어기면서 아이들에게 행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행할 수 있겠는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에 앞서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특히 부모의 말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가르침은 아이에게 잘못된 삶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느 부모도 아이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이루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떤 어른도 아이에게 성공을 위해선 말이 행동에 앞서야 한다고 역설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른의 말은 맑은데 그들의 행동이 혼탁하여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만 배우고 행동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윗 잎이 파래야 아랫 잎도 파랗다. 다음으로 바른 방향으로 향해 서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방향으로 선다는 것은 바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요, 바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나침반을 몸과 마음에 정착했다는 의미이다. 우린 매일 집을 나서면서 그 나침반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순결한 길을 걸었던 윤동주나 이육사 시인처럼 말이다. 두 시인은 자신만의 섬(立)으로 일본인들의 오염된 삶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절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나침반을 지닌 어른 밑에서 자란 아이야말로 작은 이익에 초연할 것이며 결과만을 좇는 약삭빠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의 삶이 곧 아이들의 삶의 이정표요, 부모의 촛불이 자녀의 등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른이 올곧고 부모가 의로운데 어찌 아이들이 눈앞의 이익에 흔들릴 것이며 나쁜 권력 앞에서 전전긍긍할 것인가? 하늘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스듬한 자세로 듣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두 개의 눈과 귀로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으라는 의미이다. 즉 다른 사람의 삶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제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비스듬한 자세로 삶을 대면하게 된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모든 말에 ‘YES’만 하고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자아를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귀를 잃어버리고도 그 귀를 찾지 못하는 우린 누구란 말인가? 이런 자아를 찾기 위해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바른 자세로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책도 읽고 지식도 익혀 삶의 지혜를 쌓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뜻이 사람들 사이에서 물 흐르듯 통할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자신의 삶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시대에 맞지 않게 예기와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시대가 변했지만 사람이 가야 할 길만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다. 만약 위에서 말한 3가지를 부모가 아이에게 말로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또 다른 나쁜 어른으로 조금씩 자랄 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이 지은 「야설(野雪)」이라는 작품으로 글을 가름하고자 한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에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지니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좋은 어른은 말을 하기 전에 행동을 먼저 한다. 2021.05.18. 김광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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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좁은 배움이여! 이젠 안녕. 배움을 가볍게 여기는 영혼들에게 告함좁은 배움이여! 이젠 안녕. 배움을 가볍게 여기는 영혼들에게 告함 > 김광호 칼럼니스트 배움은 죽기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살아 있는 한 배움은 끝나지 않으며 끝나서도 안 된다. 그 평생 배움을 통해 자아를 이해하고 가치관을 넓혀야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여! 혹 배움은 학교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보통 어른들은 배움은 학창 시절에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배움은 좁은 배움이요 출세를 위한 소인의 배움일 뿐이다. 언제부터 책과 담을 쌓고 TV 시청에만 푹 빠져 살았는지, 쇼핑과 화려한 소비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슨 궤변(詭辯)이냐고 말하겠지만 그럴만한 논리가 있다. 아이 때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으며, 꾸밈없이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어른이 될수록 순수하고 맑은 가슴은 조금씩 금이 가며, 사람과 소통하기보다는 돈이나 지위하고만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다 배움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그럼 어떤 배움을 통해‘어른은 아이의 스승이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주말이나 공휴일을 활용하여 새로운 삶을 접하는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여행을 하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쯤은 영화를 감상하고 가보지 않은 산이나 낯선 도시를 직접 가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과 삶을 보는 눈이 넓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짬 시간을 내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배움을 이어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을 통한 배움이 열려 있는 IT 강국이다. 자신이 원하는 강의나 세미나를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세계 석학들의 생각 또한 엿보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알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배우다 보면 21세기가 원하는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면 맑은 영혼은 잠들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틈나는 대로 책을 벗하는 것이다. 여건이 다르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책을 보는 것도 방법이요, 목욕탕이나 산책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책과 친해지면 그를 만나지 않고서는 하루를 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우릴 실망 시키지 않는다. 반드시 다양한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까지 아낌없이 제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쓰기를 통해 배움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지식은 객관화되어 있지만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만의 세상 보기를 하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거나 영화 및 여행 후기를 써 보는 것이다. 특히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과 나누었던 생각이나 감정을 빠짐없이 글로 써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타인의 생각이 아닌 나만의 지력(知力)으로 나만의 언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생각 없는 배움은 양날의 칼과 같다. 우리 주위엔 좁은 배움으로 삶을 왜곡한 사람이 많다. 그렇게 해서 일군 삶을 자랑하며 훈장까지 주니 종종 겸연쩍을 때가 있다. 공자는“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은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배움과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각 없는 배움은 양날의 칼과 같다. 바르게 쓰지 못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어느 글에서 본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글을 가름하고 싶다. 소크라테스는 형장에서 간수들이 독약을 준비하는 동안에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한 제자가 곧 죽을 것인데 왜 피리를 부냐고 묻자, 그는“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며 사형 전까지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아! 소크라테스여. 배움은 어렵다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배움을 쉽게 생각할까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왜 세상 사람들은 배움을 가볍게 여길까요. 오늘따라 죽을 때까지도 배움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당신의 영혼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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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 생채기의 역사가 교육에게 묻는다. 과연 역사의 생채기는 아물 수 있을까?김광호 칼럼니스트 아직도 오월의 아픔은 진형형이다. 오늘도 미얀마에서는 군인이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은 매스컴을 통해 그런 현장을 보면서 분개하고 가슴 아파한다. 왜일까? 군인들의 행위가 모순(矛盾)되기 때문이다. 모순이란 단어는 창과 방패에서 유래되었다. 한 상인이 자신의 창은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잠시 후 방패를 보여주면서 모든 것을 다 막을 수 있다고 강변한다. 세 살 먹은 아이가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모순의 핵심은 상인의 무책임에 있다.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와 다 뚫을 수 있는 창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그 상인의 물건 파는 행위에 대하여 분개하고 비판한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군인에게 기꺼이 세금을 내어 뒷바라지 해주고 있는데 그들은 고맙다는 말은커녕 총과 칼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그런데 진정 우리 국민이 분개하고 아파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역사이다. 아니 역사교육의 현주소이다. 해마다 3.1절, 제주4.3, 4.19의거,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기념행사를 열고 있지만, 그 사건의 본질과 실체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피해자의 영혼만 위로하며 진정성 없는 추모만 할 뿐이다. 우린 동안 아픈 역사에 대하여 피해자 입장을 중심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기껏해야 대학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한 죽은 역사만을 안내했을 뿐이다. 이른바 역사적 사건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등장인물만 외울 뿐 그 역사의 실체를 외면한 채 언제나 그랬듯이 짧게 배우고 가볍게 넘어가는 역사교육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역사를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었으며, 마치 자신의 삶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 생각하며 밖으로 멀리 내팽개쳐버렸다. 또 사월이다. 오월 또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매스컴은 그날에 있었던 민중의 아픔을 밤낮으로 토해내어 되새김질만 할 뿐 가해자에게 용기 있는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 제안하고 싶다. 삶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역사교육을 내실화했으면 좋겠다. 그날만이라도 학생들에게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하여 부끄러운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날의 아우성을 해석해보게 하자. 혹 체험학습이 불가능하다면 그날만이라도 다양한 추모행사를 열어 그날의 함성을 글로 써보게 하자. 우린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역사를 성찰해야 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1919년)된 지 100년이 막 지났다. 지금 우린 겸허하게 교육(역사교육)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식민지 교육을 강행하여 우리 민족을 황국식민으로 개조하려고 했으며 그 후 군사독재정권은 반공 전사나 산업 일꾼을 양성하기 위하여 강압적인 교육을 하였다. 소위 민주정부는 성숙한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일보다는 시험 잘 보는 사람만을 배출하는 교육을 목표로 삼았다. 당연히 역사교육은 땅속에서 깊은 겨울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만약 또다시 이런 형태의 교육이 반복된다면 지금처럼 강자와 기득권의 정의만이 세상에서 판을 칠 것이다 즉 돈이 사람보다 소중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 또한 대학 졸업자는 중등 졸업자를 깔볼 것이며 해외 유학파가 국내 학구파를 무시하며 그들만의 철옹성을 높이 쌓을 것이다. 특히 그들은 지위와 혈통을 명분 삼아 '인간 불평등을 조장할 것이며 학연과 혈연에도 우열이 있다'라는 이론을 정당화할 것이다. 생채기의 역사가 아물면 새싹도 돋아 날 것이다. 우리 교육은 여전히 수면 상태라고 진단하고 싶다. 대한민국 교육에게 감히 묻고 싶다. 이 시간에도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교육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러분은 이런 교육환경에서 역사의 생체기가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