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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년 초대전 유동명 작가의 ‘자연에 존재하는 한 송이 꽃’-2020년 12월 29일부터 2021년 1월 11일까지 전시-김종근 미술평론가, 바닷가 저녁 갯벌의 잔상을 화면으로 불러오고 있어-금보성 아트센터, 4인 관람. 기다리는 동안 차 마시는 공간 두어 불편함을 최소화 금보성 아트센터 2021 신년 초대전으로 여수 화가인 유동명 작가 작품이 2020년 12월 29일부터 2021년 1월 11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거리두기로 센터 내방 4인 이상의 관람이 제한되고 있어 사전 관람 예약을 받고 있다. 4인 관람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시는 공간을 따로 두어 불편함을 최소화 했다. 유동명 작가는 “예술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구성과 조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 자신을 바치는 행위고 나 자신을 다 주어야 남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유 작가는 “나를 안고 있는 자연은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고 “나의 그림이 자연속에 존재하는 한 송이 꽃이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작가는 우리에게 이 그림들로 먼저 회화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준다”라고 평했다. 김 평론가는 “유동명 작가의 작품은 동양에서의 회화의 사의라는 본질을 이성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화폭에 닥종이를 수없이 덧대어가며 충분히 반복적으로 바탕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색조로 색을 입힌 콜라주한 기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기에 작품마다 색조가 다채롭고 부조처럼 패턴을 지니면서, 반복적인 색채의 음양 조화가 나름 숭고함과 우아함의 표면을 풍긴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유동명 작가가 여수의 바닷가 출신임을 염두에 두면 그의 그림 속에 갯벌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스럽다”고 말하며 “작가는 바닷가 저녁, 그 남겨진 혹은 버려진 매일 보는 갯벌의 잔상을 화면으로 불러오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한편, 유동명 작가는 현재 한국예총 여수지부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개인전으로 한일미술오키나와 교류전을 비롯한 단체전 및 초대전 28회를 전시한바 있다. >유동명 작가 최향란 기자. 사진 금보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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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세 작가 ‘섬. 사람이 그립습니다’-초대전 (금보성 아트센터) 2020년 12월17일~12월30일 -첫 선 보인 섬 작업, 다시 돌아오기를 소원하는 기다림 박근세 사진 작가의 초대전이 2020년 12월 17일부터 30일까지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박 작가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섬이 주는 안락함과 설레임을 전하고자 한다. 무작정 떠났던 섬들과의 만남 속에서 외로움을 엿보는 순간, 작가는 사람이 하나 둘 떠나는 섬의 쓸쓸함과 기다림을 사진에 담았다. 작가노트 -섬에 가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편안함과 힐링으로 다가옵니다. 무작정 나의 섬을 찾아 시작된 여행이지만 항시 가슴 설레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예전엔 먹고 살기 힘들어 섬으로 들어 왔는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섬을 떠나고 있습니다.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섬은 모든 것이 시한부처럼 소멸되어 가며 덩그라니 남아있던 학교도 폐교가 되었습니다.이제 노인들만 남아 사는 섬은 경로당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무엇이 사라질지 모르지만 무인도가 하나, 둘 늘어 갑니다.밑바탕에 깔린 공동체 정신은 이미 사라졌고.... 이번에 첫 선을 보인 섬 작업은 다시 돌아오기를 소원하는 제 기다림입니다. 작업의 시작은 무작정 여행에서 출발 했지만갈수록 급변하는 섬 환경을 마주하며 기록을 남겨야 될 성싶어 카메라 렌즈로 채집합니다.사람이 살아야 섬이 섬이 되듯이섬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박근세 전시약력 2020년 박근세 초대전ㆍ섬 / 금보성아트센터.서울2016년 아름다운 여수 365섬 /여수2019년 대한민국 국제포토 페스티벌 2019 /예술의전당.서울2019년 사진작가가 소개하는 섬 평도/ EBS2019년 섬 섬 여수 /여수시청2020년 365에머랄드아일랜드 4인전/이순신도서관.여수 현재2005년부터 섬 사진가로 여수MBC TV “동네 어바웃”에서 매월 섬 소개하고 있다. 최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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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작가의 ‘내 고향 여수에 따뜻한 겨울 선물’-금보성 아트센터, 여수에 따뜻한 겨울나기 극세사 담요 후원-관내 사회복지시설 67개소에 담요 900개, 2600만 원 상당 겨울 선물 전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금보성 아트센터(관장 금보성)은 지난 1일 고향 여수에 있는 시설생활자분들을 후원하고자 2600만 원 상당의 극세사 담요 900개를 마련해 여수시에 전달했다. 이번 후원물품은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 되었으며, 여수시시설연합회의 지원으로 관내 사회복지시설 67개소에 골고루 지원됐다. 금보성 관장은 “매년 서울 경기 요양원과 장애인시설, 학교 기숙사 등에 이불과 담요를 기부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내 고향 여수를 위해서도 따뜻한 겨울 선물을 드리겠노라 마음먹었는데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고향에 계신 어려운 분들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후원의 기회를 자주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출향 인사들의 잊지 않은 고향 후원은 주는 분의 기쁨도 있겠지만 받는 분의 감동이 더 커 지역사회에 훈훈함이 전파되는 것 같다”며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주신 후원물품은 관내 사회복지시설 이용자를 위해 귀하게 쓰일 예정이며, 주신 분의 마음을 담아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금보성아트센터는 서울 경기지역 노인, 장애인시설과 고등학교 기숙사에 매년 이불과 담요를 후원하고 있으며, 화가들을 위한 상금 지원과 문학단체 지원도 실시하는 등 다양한 후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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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화가의 '김장'-한국인에게 김장은 땅과 바다의 천연 약재 상비약, 정신이 깃들은 요리 한국인에게 김장은 농사의 결정체다.봄부터 겨울까지 씨앗 뿌리고 재배하고 저장하는 반복된 고된 노동의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농사라는 것이 단순히 생계나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의미의 결정체가 무엇인가 그 해답의 정점이 김장이다.계절마다 추수한 농산물은 정성껏 관리하여 보관하는 이유가 있다.매일 소모되는 농산물도 있지만 결국 김장은 많은 양의 재료를 구입하여 저장 음식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가 구성된다. 땅에서는 쌀, 배추, 무, 파, 양파, 마늘. 당근, 고추, 생강....바다에서 소금, 새우, 오징어, 갈치, 조기, 명태, 청각, 멸치, 생굴....과수원에서 사과, 배.... 김장에 들어간 양념(약념.약재)은 천연 재료이며, 계절과 재배기간에 따라 준비를 마치면 김장용 배추나 무우는 심는 시기를 정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고 김장하는 시기가 두 달 정도 차이가 있다.김장은 저장해서 먹는 것과 바로 먹는 것에 따라 배추 사이 넣는 양념 양이 달라진다. 강원도는 입동 전에 시작하여 남쪽은 연말이나 해를 넘기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까지 배추가 얼지 않기에 가능하다. 한국인에게 김장은 땅과 바다에서 준 천연 약재(양념)로 만든 상비약이다.김장의 재료는 오행의 목.화.토.금.수의 모든 사람에게 약이 되고 에너지가 되는 한국인의 정신이 깃들은 요리이다.간혹 일본과 중국에서 김치를 자기들 것이라고 우기는 사례가 있는데 우리의 정신을 흔들고자 하는 계략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김장 후 수육을 싸서 하루의 노동과 피로를 푸는 즐거움과 든든함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최근 김장하지 않고 김치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많이는 강요하지 않으나 두 세 포기라도 김장하는 마음을 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소금과 고춧가루만 적게 넣으면 짜지도 맵지 않은 김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은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하고 남편과 아들이 도와야 될 만큼 아내나 어머니 혼자 하는 것은 버겁다. 김장의 또 다른 의미는 쉼.휴식이다.잠시 농사일을 내려놓는 경계가 김장이다. 요즘 하우스 농사로 계절에 게의치 않지만 김장은 농사라는 고된 노동 후 얻은 휴식이다. 내 고향은 남쪽 지방 여수, 연말 쯤 김장하러 가는 길이 기대된다. >금보성 관장(금보성 아트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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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미술관 ‘섬 그리고 섬’ 展을 열다-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의 비경을 찾아 떠나는 섬 스케치 여행 그리고 순회전-섬 스케치 여행 그리고 순회전...여수미술관, ‘섬 그리고 섬’ 전시 개최 여수미술관(관장 서봉희)은 8월1일부터 8월25일까지 여수미술관 전시실에서 ‘섬 그리고 섬’이라는 주제로 여수 섬들의 아름다운 경관과 비경을 담은 특별한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여수 화양면과 고흥을 잇는 해상교량 5개교가 2020년 3월 개통되어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던 아직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고요한 천예의 섬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의 섬들을 쉽게 탐방하게 되었다. 해가 일찍 떠서 밝게 비추어 준다는 조발도, 임진왜란 당시 수군이 주둔하였던 곳 둔병도, 섬의 생김새가 여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리 낭의 ‘낭도(狼島)’, 금이 있다 하여 쌓을 적, 쇠 금 자의 ‘적금도’. 여수미술관은 지난 6월, 13명의 회화 작가들과 함께 여수-고흥 간 도로 ‘백리 섬섬길’을 따라 섬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그 후 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완성하여 8월, 드디어 여수를 비롯해 서울까지 순회전을 개최한다. ‘섬 그리고 섬’展은 우리지역 여수 작가 장창익, 이존립, 정원주, 정채열, 서봉희 외 서울, 광주, 진주 작가 권혁춘, 박건우, 금보성, 김복동, 김영신, 박영진, 박은수, 장연희 총13명 작가들이 참여한 특별기획전으로 섬 스케치 답사 후 다양한 접근을 통해 여수 섬의 아름다움을 각각의 개성으로 표현한 50여점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여수미술관 서봉희 관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온 사회가 불안감 속에 힘겨운 일상을 버티고 있는 요즘, ‘섬그리고 섬’ 전시를 통해 여수 섬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고 공허함과 상실감에 대한 감정들을 공감하고 작품 속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여수미술관 특별기획전 ‘섬그리고 섬’ 展은 문화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후원하는 전시사업이다. 완성 작품들을 바탕으로 여수를 기점으로 여수미술관(8.1-8.25), 여수시립쌍봉도서관(9.3-10.31) 금보성아트센터(11.26-12.5)에서 순회전을 개최, 자연스럽게 작가 및 지역민들과의 교류장을 마련하고 여수 섬의 아름다운 매력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관광 홍보효과도 기대해 본다. 박형숙 (여수미술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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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미술관 서봉희 관장, ‘공방 아트 페스티벌’ 공예작품 전시 체험 흥국상가 활성화 기대-버스킹 공연, 어린이 체험 특별한 공예작품 전시-여수출신 금보성 작가 ‘테드라포트’ 전시 함께 열려 여수 구 상권인 흥국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27일 공방 아트페스티벌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여수미술관 서봉희 관장이 특별한 공예작품을 전시하고 체험과 함께 흥국상가 활성화를 기대하는 기획으로 열렸다. 특히 여수출신 금보성 작가의 테드라포트는 바닷가 방파제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을 전시하여 바다를 지키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지키는 상징 심벌로 ’지키다, 보호하다, 함께 하다‘라는 의미의 전시로 참여했다. 서봉희 관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함께 극복하고 기후변화s,s 우리 모두의 현실이니 COP28 유치성공으로 여수에서부터 먼저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기를 기대 한다” 는 뜻을 밝혔다. 한편 서봉희 관장은 이번 전시로 침체된 흥국상가에 활력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최향란 기자. 사진 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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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작가 여수 흥국상가에 ‘테트라포트’ 전시-금보성 작가, 어려울 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려움 극복하고 일어서야 한다-여수미술관 서봉희 관장, 공예작품 전시 체험 흥국상가 활성화 기대 여수 구 상권인 흥국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27일 여수출신 금보성 작가의 ‘테드라포트’ 전시가 흥국상가 내에서 공방 아트페스티벌과 함께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여수미술관 서봉희 관장이 특별한 공예작품을 전시하고 체험과 함께 흥국상가 활성화를 기대하는 기획으로 열렸다. 특히 여수출신 금보성 작가의 테드라포트는 바닷가 방파제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을 전시하여 바다를 지키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지키는 상징 심벌로 ’지키다, 보호하다, 함께 하다‘라는 의미의 전시로 참여했다. 금보성 작가는 “어려울 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한다. 지금 가장 힘든 코로나19 이겨내고 이는 기후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질병이니 꼭 COP28 유치성공으로 여수에서부터 먼저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기를 기대”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글 작가로 유명한 금보성 작가는 한글 ‘ㅅ’을 상징하는 바닷가 방파제를 모티브로 자연 재해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의미로 인권, 재난, 지진, 태풍, 전쟁, 난민, 분단, 질병의 트라우마로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희망과 치유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를 상징한 심벌 테트라포트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작가로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고자 했다. 한편, 금보성 작가는 기후변화는 우리가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cop28 홍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향란 기자. 사진 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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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은의 문화예술칼럼 - 금보성작가-40년째 한글회화의 확장과 변용을 거듭해온 작가, 금보성 신병은(시인) 금보성 작가는 나에게는 화가로서 보다는 시인으로 더 낯익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쯤으로 기억된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는 30대 초반의 멋진 문학청년이었고 나는 40대 초반의 장년이었다. 당시에 내가 알기로 그는 백제인이라는 필명의 시인이었으며 목회자였다. 나이를 떠나 함께 문학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든든한 후배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가 80년대에 이미 서울에서 개인전을 두 차례나 가진 화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홀연히 다시 여수를 떠났고 수년이 지나서야 내가 회장으로 있는 예총사무실에 들러 작품 한 점과 카탈로그를 두고 간 그 무렵에 평창동에서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고 조만간 김흥수 미술관을 인수하여 미술관을 개관할 것이라는 것 등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그는 2011년에 서울 평창동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그로리치 화랑을 인수했다. 그로리치 화랑은 70년대 비구상 전문 상업 화랑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 중요한 한 곳이다. 평창동 그로리치 화랑의 터는 남관 선생님. 조각가 임옥상 씨의 작업실로도 유명하다. 그로리치 화랑 인수 후 상호를 지역 이름인 <갤러리 평창동>으로 개관 후 경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사는 많다. 시인, 목회자, 문학단체 및 문학지 후원자, 한글회화 작가, 금보성 아트센터 관장, 금보성아트센터 한국작가상 운영위원장 등 한국미술계의 중심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시와 회화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특히 금보성아트센터와 한국미술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국작가상은 65세 이상의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화단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를 대상으로 선정하여 1억원의 창작지원금이 주어지는 특별한 상이다. 2년마다 시상하는 한국작가상 수상자는 응모한 100여명을 1차, 2차의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되며 수상자에게는 창작지원금과 함께 3개월간의 대규모 초대전과 작가의 평론공모, 전시작품 사진 공모전도 함께 개최된다. 최종 작가가 선정하면 10여명의 평론가들이 후보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실사를 거친다. 기본적으로 5000점 이상 되어야한다. 사실, 한국작가상 공모전은 총 2억8000만원이 든다고 한다. 1억은 작가에게 지급되고 나머지는 전시비와 평론집 제작에 투입된다. 1회 유휴열 평론집은 총 40여명의 인사들이 작품에 대한 평을 썼다. 평론비만 1인당 100만원으로 4000만원이다. 미술평론가뿐만 아니라 철학자 시인 법조인 목사 교수 등에 의뢰해 글을 받았다. 한 명의 작가를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글을 쓴 평론집은 처음일 것이다. 국내 모든 잡지에도 광고를 한다. 1회 선정 작가는 전주 모악산 기슭에서 작업하는 유휴열(70)화백. 58여년간 작업에 매진하며 한국미에 천착해온 내공이 인정받는 순간이었고, 지역작가로만 알려진 '유휴열' 이름 석자를 미술판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2018년 2회 '한국작가상'에 이흥덕 작가가 선정되었고 똑같은 대우로 전시도 하고 평론집까지 받았다.1억 상금 말고도, 창작지원금 3500만원이 주어지는 올해의 창작상 등 청년작가 지원뿐만 아니라, 전봉건 문학상 등 총 10개의 상금을 지원한다. 5년째 숙박을 제공하는 해외평론가 세미나도 열고 있다. 특히 창작상은 아트센터에서 전시한 작가 중 두 작가를 선정하여 3500만 원씩 지급하는데 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작업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예산을 그림을 팔아 충당한다고 한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그는 40년째 한글회화의 확장과 변용을 거듭해온 작가다. ‘한글’하면 금보성작가가 떠오를 만큼 ‘한글’은 그의 고유명사로 자리하고 있다. 한글의 조형성과 한글의 창제정신인 자주, 애민, 실용, 창조 정신을 밑자리로 두고 작업을 한지 36년째다. 그의 한글은 문자로서가 아니라 정신문화의 조형언어로 자리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의 세계화를 조형언어로 풀어 널리 전파하려 한다. 세종의 문자에 대한 집념과 창제정신을 밑작업으로 하고 있다. 창제정신인 자주, 애민, 실용, 창조를 들여다보면 사화과학, 자연과학, 인문학이 잘 반영되어 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창작임을 알 수 있다. 금보성의 한글회화는 이점에서 주목을 끈다. 음성기관의 모양을 본뜬 상형의 원리. 양성과 중성, 음성의 성리학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지사의 원리를 통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융합하고 통섭한 결과물이 한글임을 알 수 있다. 융합과 통섭의 의미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정신을 공유하는 창조법이 된다. 이러한 창제원리를 조형법으로 적용한다.그의 조형적 기본자리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을 순간의 느낌으로 자유롭고 다양하게 변형하고 배열하는 구성법을 적용한다. 자음과 모음을 기본단위로 정물, 인물은 물론 정신적 지문까지 아우러는 인문학적 풍경을 그려낸다. 뿐만아니라 평면작업에서 스칠로폰을 활용한 입체조형까지 경계를 확장하고 변용하는가 하면.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한글조형의 영역을 기하학적으로 확장시키면서 그만의 색채이미지로 풀어낸다. 그의 한글회화는 일찍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로서의 오브제다. 특히 그는 한글을 통하여 한국인의 문화 감성을 깨우고자 노력한다. 그에게 한글은 단지 조형적 오브제가 아니라 한국의 정신이지고 문화지문임을 자각하고 있다. 21세기 ‘퓨전주의’와 접목하여 한글조형의 동적인 아름다움을 그렸으며 정서적 풍경보다는 ‘한국인의 정신’을 그려낸 작품으로 평을 받고 있는 그래서 그는 “나에게 한글은 종교 이상이다"라고 말한다. 흔히들 미술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작가나 작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의 시선과 안목이 작품화 된 것이다. 이점에서 보면 그의 작업의 근저는 한글을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깊고 넓은 세종의 통찰력이 금보성의 한글 회화의 철학이 된다.세종의 그 위대한 숨결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기호학적 의미로 이어져 오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캔버스에 유영하는 조형을 통해서 의미를 시각화하고 있다. 의미를 한글 자모의 기호학으로 풀어 조형공간에서 입체조형으로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고 포개어져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게 한다.이렇게 보면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난 분석과 통찰, 해체와 융합으로 한글을 재창조하는 큰 작업이다. 인간, 자연, 역사, 예술, 사회, 철학이 어떻게 한글을 통해서 서로 만나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를 쓰다 보니 시에 색을 올리면 그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술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누구에게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다. 한글을 풀어 퍼즐처럼 만들고 색을 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상, 비구상으로 변했다. 그렇게 한글 시리즈는 윷놀이, 아리랑 시리즈로 진화했고 '한글 작가'가 됐다.’ - <금보성 작가의 뉴시스 인텨뷰기사에서> 그의 한글회화는 구상과 비구상, 공공미술까지 확장된다.그의 한글 시리즈는 윷놀이, 아리랑, 테트라포드(테트라포드:지켜주다 보호하다 안전하다) 등으로 진화되고 확장된다. 그것은 평면에서 입체로, 평면과 입체의 융합으로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노마드적 기질에서 비롯된다. 뿐만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방파제’로 변용된다. 즉 테트라포드는사이시옷의 메타포, 관계의 미학, 하나와 여럿의 관계, 뭍과 바다, 포용과 수용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작업이다. 한글의 사이시옷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여기에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관계성과 통섭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이시옷의 역할을 갖는다는 것 또한 그가 조형의도와 일치한다. 뭍과 바다를 매개하고 통섭하면서 독자적인 의미를 개척하고 있다. 그의 테트라포드는 관계의 미학으로서의 고유명사가 된다. 그는 테트라포드로 2015-2017년 청주국제공예 아트 페어에서 특별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 아트센터 관장으로서 대한민국 미술계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한글 조형은 낱 생명과 온 생명의 관계미학으로도 이해된다.우리가 사는 우주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세포인 낱생명이라는 것, 그중에 하나라도 훼손되고 병들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 등의 내포적 의미로 두고 있다. 그래서 한글을 통해 우주라는 공간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바라본다. 그에게 한글 즉 언어는 사회과학이면서 자연과학이고, 결국 인문학으로 소통하는 길이다. 이것이 그의 한글 회화가 갖는 포즈가 된다. ‘그의 작업은 두 개의 프로젝트에 호응한다. 첫 번째는 한글의 중심에 존재하는 힘과 에너지를 드러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바로 어떻게 이 힘과 에너지가 한국인의 영혼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구성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미학적인 측면과 상징적 측면의 조화가 가능한 조형적인 세계를 발전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을 그는 한글을 구성하는 글자들 속에서 찾아냈다. 사실, 가끔은 복잡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글자는 보통 단순하다. 그러나 다른 글자와 합해져 의미를 갖는 단위가 되면서 글자는 하나의 집과 같은 구조를 갖춘다.’ - 장루이 <금보성 작품에 대한 단상> 지금 금보성 아트센터는 대한민국 미술작가뿐만이 아니라 문학, 음악 등의 예술인의 소통의 공간으로 100여 평에 4개의 전시공간과 창작레지던시 공간을 갖고 있다. 연간 천여 명의 작가 초대전을 개최할 만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적 운영으로 대한민국 작가들 사이에 주목받는 아트센터로 자리 잡았다. 아트센터는 나이와 학력, 종교, 국가와 장르에 구애됨이 없이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초대받은 작가들은 미술계에 특별한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이미 미술대학 졸업반에서는 금보성아트센터 전시는 성공하는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알려졌다.작업과 경영은 전혀 다른 길이지만 스스로 몸을 낮추어 낮아지는 것과 기도하면서 소통과 공유를 실천하고 있다.이제 그는 한글 회화 북한전시회 개최를 꿈꾼다.그가 꿈꾸는 북한전시회는 한글의 명칭이 지닌 뜻처럼 큰 글과 큰마음을 가진 민족의 위대한 정신문화이므로 냉전을 극복하는 하나의 작은 불씨로 혹은 밑거름으로 자리할 것이 분명하다.그가 꿈꾸는 한글회화의 세계화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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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한글에 윷을 던지는 금보성 작가“작품 스스로가 말한다. 나 이 자리 싫어 라는 말 알아들어야하는데 힘들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작품이 원하는 자리에 다시 옮겨줘야 한다” -한 사람의 작가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뿌리 내리고 있는 많은 나무들 중에 한 그루 나무 1. 시인이었고 지금은 화가다. 인간 금보성이 긍금하다. 나는 누구인가? -여수에서 태어나서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 올라와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이 되었고 대학 1년 때 그림으로 첫 전시를 했다.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전시를 한다고 하니 편견이 있었다. 30년이 지났을 때 저 친구가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네? 라고 말하며 신기해했다. 여수만 생각하면 온 몸에 전율이 돈다. 행복했던 시절보다는 힘들었던 시절이 더 많았다. 이런 모습으로는 고향 여수에 갈수는 없었다. 더욱 많이 노력했어야 했다. 금보성이라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말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작가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많은 나무들 중에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한다.최승애작가 초대전시를 위해 작품배치를 다 끝냈는데 작품 스스로가 내게 말을 한다. "나 이 자리 싫어" 라는 말을 알아들어야하는데 힘들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작품이 원하는 자리에 다시 옮겨줘야 한다. 나는 작품이 내는 소리를 소중히 여긴다. 2. 전공을 하지 않은 무명작가의 세월, 35년 동안의 과정에 외로움 짙은 길이 엿보인다. -누군가 전시회장에 찾아와서 그림을 본 후에 “학교 어디 나왔어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럼 나는 “고등학교 나왔습니다”라고 답했다. 내가 신학공부를 했다고 말하면 그 과정의 길을 구구절절 설명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언젠가 부터는 그냥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작품에 관심을 갖던 고객들이 “아~네” 하고는 그냥 떠나갔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전체가 학벌과 연줄 등 조건이 따른다. 그러나 그 조건들을 극복하는 것도 내 몫이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학벌을 묻기 전에 내가 더 좋은 그림을 그렸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질문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그냥 어떤 질문을 받고 그들이 원하는 입맛에 맞추려면 내가 살아온 시절을 부정해야 한다. 내가 원해서 신학을 하고 시를 썼던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전공은 아니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내게 필요한 영양분이었는데 그 분들 입장에서는 비전공자라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니 설득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지나가야하는 것이다. >인터뷰 사진. 오른쪽 금보성 작가 2. 화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시를 썼다. 그리운 고향 여수에 대한 이야기였다.그림은 내 조국 내 언어에 대한 소통으로 언어의 메시지다. 한글로 작업 할 수 있는 회화, 조향, 패션 모든 보여지는 것들을 표현했다. 왜 글을 쓰게 하고 왜 그림을 그리게 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못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자의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누군가 계속 미니까 밀어서 여기까지 왔다. 보보이지 않는 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한글을 그림으로 하지 않아서 그 건 내가 해도 되겠다 싶었다. 글을 썼던 사람이니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색감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한국은 선, 일본은 배색이다. 많은 사람들이 옷을 살 때 가장 먼저 색상, 디자인, 가격의 순으로 결정한다. 그림도 먼저 색을 본다. 아무리 잘 그려져 있어도 색을 잘못 선택하면 실패한다. 선과 색을 잘 배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나는 처음부터 한글이었고 지금도 한글이 주제다. 그림의 형태는 가금 5년 주기로 바뀐다. 얼굴과 한글을 접목시켜보기도 한다.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슬픔이 있다. 한글이 갖고 이는 나 자신만의 역사, 놀이 등을 접목시켜 내 속에 있는 슬픔을 윷으로 던져보고 기쁨을 다시 회복하는 것들. 한글이 가지고 있는 작은 이야기지만 회화로 표현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일 수도 있고 슬픔일수도 있다.감정이 살아나고 생명이 느껴져야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작업의 방향을 진화 시킨다. 3. 고향인 여수를 떠나온 지 35년이다. -서울에서 1만9천명의 작가 전시를 했다. 그 많은 전시를 하면서 고향 여수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을 뿌리 내릴 수 있는 공간. 문화에 대하여 심도 싶은 장이 되는 공간을 여수에 만들고 있다.나의 뿌리는 여수이니 내가 여수에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술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부르고 관광명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작가다.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명품공간을 여수에 만들 계획이다. 4.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어떤 것인가? -광복절 기념으로 했던 작년에 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했던 ‘테트라포트’ 전시회다. 지진과 전쟁, 분단의 아픔, 질병 등 인류가 격고 있는 아픔과 절망을 평화의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는데 지금도 놀라웠던 것이 미국의 메트로폴리탄에 왔던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도 위로를 받았다.테트라포트는 한글 ‘ㅅ’을 의미한다. 해변을 지키는 방파제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하고 아픔을 위로하는 한글 조형물의 메시지를 외국 사람들도 전달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 심장소리에 나 스스로 놀랬다.아, 허투로 그림을 그려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가로써 부담은 되지만 전시에 대하여 짜임새, 작업 등을 다시 되잡는 계기가 됐다. 5. 한국작가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나는 그림을 빨리 그리는 편이다. 30년 동안 부보님, 형제, 친구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지 몰랐다. 화가로 활동한다는 걸 아는지 5년 정도 됐다. 신학공부 하고 선교사를 했던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밝히지 않았다.캠퍼스와 도구들이 필요했다.사무실 파티션이 버려져 있으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두워지면 주워 와서 그림을 그렸다.어느 날은 비가 와서 버려진 파티션이 다 젖었는데 주워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가져가자고 하고 비에 젖은 파티션을 들고 갈 때 처량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공중전화박스에 걸린 책을 철끈을 끊고 몰래 훔쳐와서 드로잉을 해야 했다. 가난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다.화가도 종교의 성직자처럼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림을 보기 위하여 베르셀로나로 여행을 간다. 미완성의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우디 건축물을 보기 위하여 스페인으로 여행을 간다.화가 한 사람이 잘하면 전 세계의 사람을 부를 수 있다. 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앞으로도 작가로써 작업하기를 소망한다. 최향란기자. 사진 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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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성 온라인 전시영상 Artist Kim Bo Seong 2020금보성 온라인 전시영상 Artist Kim Bo Seong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