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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식의 <시 읽어 주는 남자>
시들지 않는 꽃
서수경
일주일에 한번씩
연화 엄니를 만나러 가는 길
잃은것이 많아
하늘도 못 쳐다본다는 그녀,
'엄니 저 왔어요'
방 한 켠 복사꽃이 리본을 달고 웃는다
‘엄니 저건 무슨 꽃이어요?’
‘응 저거 어버이날 아들이 줬는데 참 좋아
꽃은 시들어 없는데 잎은 파랗게 그대로 있어 또 꽃피겠지?’
그러고 보니 새순이 예쁘다
살며시 꼬집었는데 아프지 않다 조화다
'엄니 그렇네,
새 순 좀 봐 아들이 생각이 깊네
잘 키워야 쓰것구만'
엄니는 날마다 눈 맞추고
물 갈아주며
하늘로 보낸 아들처럼 살핀다.
박복한 가슴 칠 때도 시들지 않고
꼭 그만큼 만 자란
변하지 않는 꽃을 품에 꽂았나 보다
구순이 다 된 노모의 가슴에
아들은 시들지 않은 꽃이다
/시시한 이야기/
우동식
“자식은 우주의 집중으로 피워 낸 시들지 않는 꽃 ”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손상기화백의 <시들지 않는 꽃>이 연상 된다.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이미지도 그렇다.
어쩌면 그 전시회를 감상하면서 그 그림을 보고 이렇게 읽었는지 모를 일이다. 여수 출신의 천재 화가 손상기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3세 때부터 앓은 구루병 탓에 척추만곡(꼽추)이라는 불구의 몸으로 평생을 병마와 싸우면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며 자신의 길을 걸으며 발자취를 남겼다. 손상기는 문학성과 시적 감수성이 풍부한 화가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며 이미지의 집약을 통한 시 같고 문학작품 같은 그림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를 이미 시들어 버려 더 이상 시들 수 없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영원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의 시적인 화자는 일주일에 한 번 씩 노인을 방문하여 돌보는 생활지도사 인 것 같다. 구순의 노모와 나누는 대화가 따뜻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자식을 부모보다 먼저 보내고 하늘도 못 쳐다본다는 그녀, 옛 부터 우리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 보다 먼저 죽는 아픈 심정을 참척(慘慽)이라 하였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눈이 멀 정도로 슬프다는 뜻으로 아들이 죽은 슬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상명지통(喪明之痛) 이거나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같다는 견지에서 단장지애(斷腸之哀)라 하기도 했다.
죽음은 근심과 슬픔을 불러 일으켜 넋이 빠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픔이 있는 것이다.
어버이날 아들이 사 준 조화 복사꽃이 리본을 달고 방 한 켠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 꽃은 떨어져 나가고 잎만 파랗게 나 있는데, 노모는 날마다 눈을 맞추며 정성껏 물을 갈아주고 아들처럼 보살핀다.
부모의 가슴속에 아들은 변하지 않은 꽃, 시들지 않은 꽃으로 존재한다.
정용화시인의 싯귀처럼 ‘우주의 집중으로 피워낸 꽃’이 자식 일게다. 일 상 삶에서 이미지 한 컷을 잡아내어 자식과 부모의 관계 속에서 사랑과 아픔, 소중함을 절절이 보여준다. 오월 가정의 달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우동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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