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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장사지내는 코끼리▲임병식 수필가 세상은 놀라운 일도 많다. 갖가지 기후현상을 비롯하여 지구에 몸담고 사는 동식물들이 깜짝 놀라울 행동을 보여 탄성을 내지르게 만든다. 기후현상으로는 한쪽 대륙은 가뭄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또 한쪽에서는 한파가 계속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폭염이 쏟아져 대지를 초토화 시켜 놓는다. 엊그제는 남극지방에서 기후온난화로 인해 집채만 한 빙하가 떠내려와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놀라는 장면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자연현상 말고, 일전에 지상에 인도 벵골지역에서 사는 코끼리가 장사지내는 장면을 내보내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일개 동물에 지나지 않는 코끼리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놀라우면서도 소름마저 끼치게 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아시아 코끼리의 새 장례문화가 발견되었단다.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죽은 아기코끼리를 땅을 파서 매장을 해두었다는 것이다. 머리와 네발을 하늘을 향하도록 절반쯤 묻어 놓았더란다.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그 기사를 대하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이와 견주어 인간은 어떤가. 물론 대다수는 그렇지 않고 극히 일부 인간말종들이 보여주는 사례지만, 혀를 끌끌 차게 한다. 보모가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때려죽이고, 늙은 부모가 짐이 된다고 유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끼리는 죽은 새끼를 멀리 끌고 와 정성껏 매장하고 구슬피 울며 떠났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들의 장례풍속이 얼마나 가상한 것인가. 동물이 보여주는 행동이 예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장사를 지내고 떠난 코끼리들은 그 후로 무덤을 찾지 않았다는데 그것은 그런 의식을 치러줌으로써 모두 잊고자 한 것이었을까. 그러한 행동을 보면서 코끼리는 비록 동물이지만 사람 못지않은 감성과 영성을 지낸 개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코끼리를 절대로 우습게 여기거나 열등하게 볼 동물은 아닌 것 같다.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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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숨겨둔 기쁨▲임병식 수필가 산에 오르다가 야생 난을 만났다. 마음먹고 오른 등산은 아니었고 마침 내리던 비가 그쳐서 꽃나무를 사들고 찾아간 발길이었다. 이날은 마침 경칩이기도 해서 마음이 들떴다. 아내 무덤 밑에다 나무를 심어놓고 조카가 가꾸고 있는 이웃 농장을 찾아갔다. 거기에는 감나무를 비롯해서 황칠나무, 밤나무, 호두나무, 편백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다. 어렸을 적이 생각이 나서 산 위로 내달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중간쯤에 있던 고총의 무덤은 상상외로 위쪽에 있고 전에는 지천이던 딱주는 하나도 보이지 않은 가운데 야생난이 지천이었다. 이것들은 벌써 꽃이 핀 것도 있고, 대부분이 한참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그 무리 중에 눈에 꽂히는 것이 있었다. 이파리 중간에 노랗게 물이든 중투의 난이었다. 그것은 온전한 것은 아니고 노루나 토끼가 뜯어 먹었는지 중간이 잘려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파리 하나가 온전하여 중투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야, 반갑다. 중투!” 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촬영한 후 조심스럽게 낙엽으로 덮어주었다. 성장을 위해서는 노출을 시켜놓아야 하겠지만 누가 보면 금방 채취해 갈 것 같아서였다. 조카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는 산 두릅도 많은데 외지인이 먼저 서리를 해가는 바람에 한 번도 맛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퍼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 조치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놓아야만 그나마 보존이 될 것이 아닌가. 그리해 놓고 돌아서니 마음 한 켠 크게 기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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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땅거미 질 무렵▲임병식 수필가 해가 함지에 빠지고 잔광이 아직 그 기세를 이어가고 있을 때부터 반대로 저녁은 시작된다. 물리적인 야간은 이미 테입을 끊은 뒤지만 땅거미는 썰물이 서성이며 갯벌에 머물던 미련을 어쩌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주도면밀 하게 짙어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다리 긴 사람이 마치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 같다고나 할까. 이때는 여명이 밝아오는 때와는 달리, 또 다른 긴장감에 휩싸이는 시각. 각일각 다가선 어둠이 검은 휘장을 두르고 침묵 속에 빠뜨리는 시간이다. 그 유사한 전경을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점령군이 밀려온 것 같았다'고 표현했지만 옥죄이며 포위하여 오는 모습은 그와 다르지 않다. 이 시간대는 또 한편으로 잠드는 것과 깨어나는 것의 교차점이기도 하다. 가을 녘에 맞이하는 이 시각은 벌써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고 박꽃 달개비 꽃은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들녘에 나가 허리 펼 새 없던 농부는 귀가를 서두르고 밭갈이에 지친 일소는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다는 뜻인지 코뚜레 줄에 매달은 풍경을 타종이라도 하듯 뎅그렁거리며 돌아온다. 이 순간은 모든 것을 점검하고 갈무리하는 시간. 아직은 희끄무레 남은 잔광 속에서 챙길 수 있는 일은 다 챙겨야 하는 순간이다. 나는 내 유년의 아련한 추억 속을 돌아볼 때 이 때 쯤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6.25전쟁이 종전으로 치달아 발생한 부상병들이 하나 둘씩 귀가를 서두를 때, 흙먼지 뒤집어쓰고 기마전이며 병정놀이에 빠져 지쳐가던 때가 이때였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전봇대 같이 치솟은 굴뚝에서 피어 오르던 연기가 잦아들고 '아무개야 밥 먹어라' 부르는 소리가 왁자하던 때도, 그 시절이 아련한 때도 이때이다. 하여, 나는 여명을 지켜보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지만, 땅거미 지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늘 한정된 유년의 뜰에 머물러 있다.'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그 노래가사가 어찌하여 불려주고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검둥개처럼 뒹굴던 시절이 잊히지 않는 것이다.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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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음속에 남은 잔상(殘像)▲임병식 수필가 바닷물이 들고 나는 간석지는 하루 두 차례씩 꼬박꼬박 속살을 드러낸다. 보일 것 다 보이면서 보고 싶으면 다 보라는 듯이 하나도 감추지 않는다. 그런지라 물에 잠겨 보이지 않던 갯바위도 이때는 정체를 드러내어 실체를 보여준다. 그런 바위 위에는 낮에는 작열하는 햇살이 내려앉고 밤에는 교대로 달빛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바다가 맨몸을 드러내는 때면 바위에 달라붙어 있던 따개비들은 ' 이때다'하고 몸을 움크린다. 노출되어 다른 것에 먹히지 않도록 꼭 입을 다물어 버린다. 하나 반대로 게들에게는 이때가 활동 시기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 세상을 만난 듯 개펄 위를 헤적이며 다닌다. 나대는 건 녀석들 뿐만이 아니다. 달리기 선수인 갯강구 또한 무대가 좁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오지랖 넓은 행동을 개시한다. 이들의 활동은 나중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갯고동이다. 이놈들은 미동 없는 듯해도 나중에 보면 온 바위에 체액을 발라 범벅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모래 위나 개펄 위를 기어 다니는 다른 놈들은 모래사장에 무수한 발자국을 찍어 놓는다. 그걸 보노라면 이놈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으로 사는지를 알 수 있다. 갯강구는 몸이 어찌나 재빠른지 움직이는 걸 따로 추적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게는 그렇지 않다. 놈들을 보면 이만저만 주도면밀한 것이 아니다. 물이 빠져나가면 마치 해병이 잠수함의 해치를 열고 나오듯, 흙더미를 떠밀고 나왔다가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 쏜살같이 몸통을 숨기고는 입구를 흙으로 막아버린다. 그러면 감쪽같이 흔적은 감춰지고 밀물은 천연덕스럽게 그 위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몽따고 뒤덮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금 전까지 펼쳐진 활동 흔적까지를 지워버리는 건 아니다. 엊그제 설 명절 때였다. 식구가 내외뿐인 우리 집은 늘 절간만 같았는데 근간에는 여러 친인척이 찾아와 머무는 통에 왁자했다. 그것이 싫지 않은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내가 여간 흐뭇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돌아가야 할 발길이기에 서둘러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 발길은 창문 한 번 열어서 공기를 환기시킬 때처럼 잠깐 신선한 변화를 선사하고 갔을 뿐이었다. 그런지라 뒤끝은 허전하고 예외 없이 일상으로 되돌려졌다. 하지만, 흐뭇한 인정은 훈김처럼 여운으로 남는다. 마치 간석지가 썰물에 드러났다가 다시 민물로 채워져도 그 흔적이 한동안 기억 속에 계속 어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