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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한 남면 안도
한창진의 역사저널 ‘여수달력’ 살펴보기. 오늘은 여수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34km 떨어져 있고 금오도·연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루고 있는 남면 안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이하 내용은 한창진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최향란 기자 : 오늘은 한창진 소장님과 금오열도를 이루고 있는 남면 안도의 달력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한창진 소장 : 남면 안도에는 여안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2022년 폐교를 했다는 것이 안타깝지요.
사진> 폐교 후 캠핑장이 된 여안초등학교
1922년 안도사립학교를 설립하였고, 1942년 여안공립학교 개교, 1949년 여안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덩달아 1984년 개교한 여남중안도분교장도 2020년 폐교됐습니다.
최향란 기자 : 100년의 흔적인데...지금은 폐교 후 캠핑장이 된 위치뿐이라서 조금 서운하긴 하네요.
남면 안도리에 속한 섬, 안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창진 : 1896년 돌산군이 세워지면서 금오도, 안도, 연도가 금오면이 됐어요. 1914년 돌산군과 여수군이 통합하면서 안도에 면사무소를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지방 유지들이 공출과 자녀 징집, 기부금 많이 들어갈 것으로 우려하여 금오도에 면사무소가 들어섰습니다.
1885년 금오도 봉산이 해제되기까지는 금오도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도였다. 1860년 안도 대화재가 발생하여 300호 중 1호만 남고 모두 불에 타 주민들은 금오도와 연도로 이주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최 : 그럼 처음에는 안도가 훨씬 큰 역할을 했던 섬이군요?
한창진 : 그렇지요. 1917년 안도에 일본인 자녀가 다니던 심상소학교가 세워졌어요. 면 소재지도 아닌 안도에 일찍이 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은 그만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심상소학교는 1942년 여안국민학교에 흡수되어요.
1797년 안도에 이양선이 들어왔고, 1668년 당나라 선박이 들어왔습니다. 신라말 847년에 당나라에 갔던 일본인 승려 엔닌이 돌아오면서 안도에 들렸다는 것이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나와 있어요.
또한 안도가 이미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했다는 것이 2007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안도(安島)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패총,貝塚) 유적
최 : 안도가 이미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한창진 : 여수시가 안도대교 건설 공사를 할 때 조개무지에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나온 것이 현실입니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무덤 4기, 집터 2기 등이 확인됐어요.
사람 뼈에서 나온 조가비로 만든 팔찌, 돌칼, 덧무늬토기, 둥근귀걸이, 흑요석은 일본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물들이지요. 신석기시대부터 안도가 국제해양교류의 중심지였다는 증거가 됩니다.
2024년 여수 역사달력에는 8월과 9월에 안도에서 발굴 된 유물을 소개했으니 함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안도대교가 건립되기 전 건너 안도 문화재 발굴 조개무지>
최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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