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일)
우동식의 <시 읽어주는 남자>
연등
최향란
운문사 만세루에 앉아
팔각 세계로 들어온 구름 본다
연등 골조 사이사이 한지 붙이고
풀이 마르기까지
깊고 어두운 세상을 향해
한 쪽 끝만 말은 연꽃잎 펼쳐둔다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꽃잎 붙이는 손가락
허공에서 섬세하다
윗줄과 아랫줄 거리 구름 자리하고
오랜 불면과 삐걱대는 그림자는
바람의 손길로 상하좌우 살핀다
잃었던 길 원 그리듯 돌면서
오래된 슬픔을 균형 있게 붙이고 나면
다시 바람이 되돌아 올 시간 기다린다
연못에 피어있던 연꽃 보이고
세월 흐르고 흘러도 사라진 게 아니라는 소리 듣고 있다
아주 오래전 사천왕상 손에 꽃과 창 쥐어주며
우주사방 지키는 수호신 되어라 명 하였다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한 호흡 잠시 멈추고
꽃잎 반대 방향으로 붙이는 초록받침
구름문 활짝 열었나니 마침내 연등불 켠다
詩詩한 이야기
우동식 시인
-연꽃 한 송이 피는 것도 우주 삼라만상이 집중한 것,
-연등하나 드는 것도 우주를 밝혀 빛내는 것,
운문사는 경북 청도군에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정면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인 만세루가 있다.
시적인 화자는 만세루 앞마당에서 연등을 만들고 있고 시인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구도(求道)를 생각 한다
불면과 삐걱대는 그림자를 지우고 잃었던 길을 찾고 오랜 슬픔을 견디고 나면
연꽃이 바람의 시간으로 되돌아와 연등이 된다.
여기서 바람은 ‘바라밀다’로 읽혀진다. ‘바라밀다’는 산스크리트어로 완전한 상태, 구극(究極)의 상태, 최고의 상태를 뜻한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신성시 한다. 연꽃을 이르는 표현으로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맑고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 세상을 정화 한다는 말로 연꽃을 통해 불교의 진리를 설파 한다.
진흙 곧 사바사계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즉,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말한다. 2009년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된 700년 된 연꽃 씨앗이 꽃을 피웠고 ‘아라홍련’이라 이름하여 현재는 그곳에 연꽃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2천년이 넘은 연꽃 씨앗이 발아 된 예를 보면 연꽃은 생명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 발걸음에서 부터 좌대에도 부처님의 설법 염화미소에도 사천왕상의 손에서도 연꽃이 등장한다.
세월 흐르고 흘러도 사라진 게 아니라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최향란 시인은 운문사에서 구름을 활짝 열어젖히고 마침내 연꽃이 연등이 되어 불을 밝히는 모습을 노래한다. 어두운 중생들을 향한 구도의 절정이다.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기를 바라고 따뜻한 마음이 불빛처럼 온누리에 퍼져나가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시인은 연꽃 한 송이 피는 것도 우주 삼라만상이 집중한 것이며 연등하나 드는 것도 우주를 밝혀 빛내는 것임을 시적 메타포를 통해 말하고 있다.
곧 사월 초파일은 석가탄신일이다. 스스로 마음에 등불 하나씩 준비하여 운문사 솔바람길을 걸어 만세루에 앉아 처진 소나무와 불 꺼지지 않는 연등을 무심히 바라보고 싶다.
우동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