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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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역사 달력] 8월 20일의 여수▲역사를 되돌아 본다 ‘시민감동연구소 여수 역사 달력’, 8월 20일 ㆍ여수건국준비위원회 결성(1945) ㆍ국동 28만평 매립 완공(1970) ㆍ여서동 ‘국군묘지 ’57기 무선 이전(1976) ㆍ성인병원(한독,성심)설립(1980), 휴업(2018) ㆍ여천군 돌산읍 우두리로 청사 신축 이전(1994) ㆍ화치동주민 대림산업2공장굴뚝 분진발생 항의(1994) ㆍ시민협 3여통합 장단점 조사결과 발표(1997) ㆍ거문도 떼배 전통방식대로 복원하여 진수식(2001) ㆍ제1회국제범선축제 개최(2002) ㆍ80억 횡령 관련 공무원 도인사위 징계 수위 낮춰져 논란(2013) ㆍ주)반석 열교환기 확관 작업 중 작업자 질식사(2016) ㆍ시의회 전남대국동캠퍼스 재활병원 건립 의결(2018) ㆍ호남화력발전소 계전기 점검 작업자 5명 감전(2021) ㆍ여수여중 제21회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 대상 수상(2022) /시민감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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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역사 달력] 8월 19일의 여수▲역사를 되돌아 본다 ‘시민감동연구소 여수 역사 달력’, 8월 19일 ㆍ여천군 율촌면 송도리 주민들 자력으로 발전기 가동(1977) ㆍ소호동성당 설립(2008) ㆍ여수광양항만공사 설립(2011) ㆍYNCC 중흥부두 C5선적 작업 중 화재(2013) /시민감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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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산에 백제시대 산성이 있다▲한창진의 여수 달력 '고락산에 백제시대 산성이 있다' 여수시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고락산, 여수시민 누구나 한 번쯤 걸었을 고락산 둘레길이 있다. 그 고락산에는 산성이 있다. 여수에 있는 25개의 산성과 성 중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 산성이다. 그것도 특이하게 2중성이다. 산 중턱 220.9m에 본성이 있고, 산꼭대기 335m에 보루 초소 역할을 했을 부속성이 있다. 남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서 만든 산성이다. 1983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04호로 지정되었고, 본성의 둘레는 354m, 보루 둘레는 100m로 비교적 작은 성이다. 본성과 보루에는 각각 3개의 문지가 있다. 고락산성이 백제시대 산성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1999년부터 2001년 여수시가 유적 복원 사업을 하면서 백제계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가야계 유물이 출토 되었다. 문수동 주택단지에서 고락산을 오르면 본성이 나온다. 지금도 복원 공사를 하면서 나온 기와 조각들이 쌓여있다. 산성에서 침입하는 왜구에게 던졌을 석환, 연등천과 만성리 해수욕장에서나 봤을 법한 1,500년 전 몽돌 수마석을 찾을 수 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정상에 오르면서 지나쳤던 그 고락산에서 출토된 유물을 2024년 여수역사달력 11월 달력 역사그림판에서 만날 수 있다. 부여와 익산에서 녹유, 유약을 발라 만든 녹유도기, 호랑이 모양의 남성용 변기 호자 등이다. 토기 등 출토된 유물로 보았을 때 고락산성은 6세기 중엽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본다. 박물관이 만들어지면 직접 볼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 여수역사달력이 먼저 선을 보인다. 여수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문화가 발달 된 곳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다. 여수는 이미 지하 박물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수시가 의욕적으로 고락산성 복원 사업을 시작했으나 마무리를 짓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이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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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9호 2023년 11월 7일 (화)▲ 선택 시 PDF 신문기 가능합니다. [23년 11월 7일 (화) 여수일보 헤드라인뉴스] ▶‘남해안권 해양 관광·MICE 도시 포럼’ 남해안권 웰니스 푸드 알린다!<https://m.site.naver.com/1fs7n ▶유)금오관광, 미래세대 위한 ‘지속 가능한 지구 만들기 ESG 경영’에 앞장<https://m.site.naver.com/1frg1 ▶여수시 가족+센터 다문화 가족을 위한 ‘우리 가족 행복 프로젝트’ <https://m.site.naver.com/1frWH ▶여수시 민간어린이집 연합회 지구건강지키기, ‘함께 하는 프렌즈 플리마켓’<https://m.site.naver.com/1frXW ▶여수해경, 수출용 패류생산 지정해역 해양오염 단속<https://m.site.naver.com/1fs5f ▶<우리지역소식><https://m.site.naver.com/1fs9J ▶한창진의 역사저널 ‘여수달력’ - 남면 안도<https://m.site.naver.com/1fs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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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진의 역사저널 ‘여수달력’ - 남면 안도-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한 남면 안도 한창진의 역사저널 ‘여수달력’ 살펴보기. 오늘은 여수시내에서 남동쪽으로 약 34km 떨어져 있고 금오도·연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루고 있는 남면 안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이하 내용은 한창진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최향란 기자 : 오늘은 한창진 소장님과 금오열도를 이루고 있는 남면 안도의 달력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한창진 소장 : 남면 안도에는 여안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2022년 폐교를 했다는 것이 안타깝지요. 사진> 폐교 후 캠핑장이 된 여안초등학교 1922년 안도사립학교를 설립하였고, 1942년 여안공립학교 개교, 1949년 여안국민학교로 변경하였다. 덩달아 1984년 개교한 여남중안도분교장도 2020년 폐교됐습니다. 최향란 기자 : 100년의 흔적인데...지금은 폐교 후 캠핑장이 된 위치뿐이라서 조금 서운하긴 하네요. 남면 안도리에 속한 섬, 안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창진 : 1896년 돌산군이 세워지면서 금오도, 안도, 연도가 금오면이 됐어요. 1914년 돌산군과 여수군이 통합하면서 안도에 면사무소를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지방 유지들이 공출과 자녀 징집, 기부금 많이 들어갈 것으로 우려하여 금오도에 면사무소가 들어섰습니다. 1885년 금오도 봉산이 해제되기까지는 금오도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도였다. 1860년 안도 대화재가 발생하여 300호 중 1호만 남고 모두 불에 타 주민들은 금오도와 연도로 이주를 하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최 : 그럼 처음에는 안도가 훨씬 큰 역할을 했던 섬이군요? 한창진 : 그렇지요. 1917년 안도에 일본인 자녀가 다니던 심상소학교가 세워졌어요. 면 소재지도 아닌 안도에 일찍이 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은 그만큼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심상소학교는 1942년 여안국민학교에 흡수되어요. 1797년 안도에 이양선이 들어왔고, 1668년 당나라 선박이 들어왔습니다. 신라말 847년에 당나라에 갔던 일본인 승려 엔닌이 돌아오면서 안도에 들렸다는 것이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나와 있어요. 또한 안도가 이미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했다는 것이 2007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안도(安島)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패총,貝塚) 유적 최 : 안도가 이미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한창진 : 여수시가 안도대교 건설 공사를 할 때 조개무지에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나온 것이 현실입니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무덤 4기, 집터 2기 등이 확인됐어요. 사람 뼈에서 나온 조가비로 만든 팔찌, 돌칼, 덧무늬토기, 둥근귀걸이, 흑요석은 일본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물들이지요. 신석기시대부터 안도가 국제해양교류의 중심지였다는 증거가 됩니다. 2024년 여수 역사달력에는 8월과 9월에 안도에서 발굴 된 유물을 소개했으니 함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안도대교가 건립되기 전 건너 안도 문화재 발굴 조개무지> 최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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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문화유산이 달력으로! "여수역사달력"-민간 차원에서 만든 2022년도 문화유산 여수달력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에 이어 정부 문화도시 지정 신청해 ▲ 여수역사달력 홍보 포스터 2018년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여수역사달력은 2021년도에 이어 2022년은 여수에서 여수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필자인 한창진 역사연구가의 구상은 지난해부터 시작하였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기록한 것은 지난 4월부터이다. 6개월동안 매달렸고, 지난 추석 연휴에 서울 딸네집에 갖고 가서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280장이 넘는 사진을 찾아 기록하였고, 1년 365일 역사적 사실을 다음 카페 [오늘 여수]에서 복사하여 간추렸다. 물때표를 자문 받고, 전통놀이를 덧붙여 초안을 만들었다. 이것을 10월 초에 여수시청 옆 송림그라픽스에 넘겨 전문 디자이너가 편집 컴퓨터 작업을 하고, 수시로 찾아가서 교정한 후 국립중앙도서관에 도서번호를 부여 받고서 인쇄소에 넘겨 11월 19일 발간되었다. 한창진 역사연구가는 "2022년도 문화유산 여수역사달력을 민간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여수시가 지난해 이어 정부 문화도시 지정을 신청하였다. 지정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문화는 크게 문화유산과 문화예술로 나눌 수 있다. 문화유산은 여수시가 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어 정비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 뿐 아니라 비지정문화재도 많다. 조사되지 않은 민간 차원 민속 문화유산도 많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보존과 발굴 의지가 생겨난다. 기존 문화재를 발굴하고 정리를 한 참고 서적은 분야별로 따로 발간되었다. ▲ 12개의 지역으로 나눈 여수역사달력의 그림지도 스케치 여수역사달력은 이것을 12개 지역으로 나눠 그림지도를 그려서 통합 정리하였다. 누구나 쉽게 우리 마을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 가를 알 수 있도록 문화유산지도를 그렸다. 빠졌거나 틀리게 기록한 것도 많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처음 시작을 해야 수정 보완될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처음 이렇게 만들면 여수시가 용역을 발주하여 더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 것으로 본다. 많은 시민들은 여수시가 진즉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개인이 시민에게 달력을 팔아서 만든다는 것은 무리이다. 인쇄소는 원자재 물가와 인건비가 올라 달력 제작 단가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로 주는 달력을 1만 원에 파는 것도 미안한데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 부득이하게 독자들의 요구도 있어 양면 인쇄를 해서 인쇄 단가를 낮춰 1권 1만원으로 발행할 수 있었다. 대신 종이 매수가 줄어든 만큼 종이 두께를 조금 높혔다. ▲ 여수역사달력 2022년 [오늘 여수] 6월 달력 위는 여수역사달력 2022년 [오늘 여수] 6월 달력이다. 여수의 주산인 종고산은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는 주제로 문화유산을 찾아 그림과 사진, 글씨로 표시하였다. 자녀와 함께 마음 먹고 길 따라 걸으면서 여수의 역사를 배울 수 있게 안내하였다. 스마트폰으로 자세한 내용을 검색을 하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올 것이다. 책을 읽어 기억하는 것보다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체험한다면 오래오래 기억할 것으로 본다. 역사 공부의 시작은 친근한 가까운 동네 부터이다. 유물과 유적은 유명 여부를 떠나 공통점이 있다. 그 원리를 깨달아 광역, 전국, 아시아, 세계로 확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유물과 사실을 발굴하는 것은 역사학자가 하지만, 지금 현재 알려진 것만이라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 보는 것이 시민 문화 의식을 높혀준다. 어떻게 거창한 문화재가 아닌 소소한 지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의 방법 하나가 여수역사달력이다. 한편 한창진 역사연구가는 "여수의 문화유산을 다른 도시, 외국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여수시민이 소중하게 여겨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라며 "여수 문화유산은 여수시민이 먼저 아끼고 보존해야 진정으로 여수가 문화도시가 되고 여수시민은 문화시민이 된다. 이런 의식의 전환을 하는데 역사달력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여수역사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이 인정한 여수역사달력 1권 값은 1만원이고, 남은 이익은 시민감동연구소 운영비용으로 쓴다. 물론 필자의 원고료와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구입 문의는 010-7617-3430으로 연락하면 된다. 하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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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한창진...여수를 사랑하는 마음에 한계선은 없다-시민감동연구소는 디지털 시대 플랫폼, 시민과 소통하는 정거장 역할-여수달력, 책임 있는 활동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 >초대석 인터뷰 사진. 김영주기자 실망도 포기도 하지 않기! 여수를 사랑하는 마음에 한계선이 없는 사람. 여수갈매기에게 여수의 길을 묻는다 이하 내용은 시민감동연구소 한창진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1. 시민운동가 한창진 대표의 인생 3모작은? 인생 3모작을 이야기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2010년 여수미평초등학교를 끝으로 28년 교직을 떠났을 때 1모작이고, 2모작은 선거에 참여한 2010년부터 2014년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3모작을 이야기한다면 시민감동연구소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수에서 시민운동가로 알려진 것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한 기간이고,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연스럽게 임원을 그만두었다. 인생 3모작의 시작인 시민감동연구소는 교육운동과 시민운동, 지방자치운동, 언론운동 등이 결합 된 결과다. >1997년 9월9일 3려통합주민의견조사 결과 통합 결정 후 시민협에서 축하사진 2. 시민감동연구소를 하게 된 바탕은 무엇인가? 28만 여수시민이 사랑하는 도시, 행복한 도시, 28만이 무너지지 않는 도시, 떠나갔던 청년이가 다시 돌아오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시민감동연구소는 디지털 시대 플랫폼, 시민과 소통하는 정거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미 20대부터 똑같은 활동을 여수에서 시작했다. 여수에서 처음 시민운동인 1976년 흥사단아카데미 활동이다. 유신 치하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 시민들과 함께 강연회, 독서토론회, 환경미화, 수련회 등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전국 흥사단과 함께 청소년운동과 민족운동을 했다. 1987년 다양한 부문에서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에 참교육운동에 참여했고, 여천교사협의회장, 전교조여천지회 초대지회장을 거치면서 여도초등학교에서 해직되는 아픔도 있었다. 30대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길거리로 나서 재야 민주화운동권이 되었다. 1989년 학동에 작은도서관, 문화사업, 교육자료실 등 역할을 한 지금의 시민감동연구소와 비슷한 ‘열린교실’에서 해직 교사로서 지역과 시민을 만나게 되었다. 1994년 화치초등학교로 복직하면서 공개적인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그 동안 여수YMCA 이사 활동과 환경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전국환경교사모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창립에 참여하였고, 1995년 지금의 여수시민협을 만들어 4~50대에 열정을 쏟았다. 대표적으로 3려통합운동, 시내버스공동배차제, 여수산단안전 환경, 시정과 의정 감시 활동이 떠오른다. 2008년부터 스마트폰 시대 시민 중심 언론을 꿈꾸면서 여수넷통 창립을 준비하여 2011년 인터넷신문을 창간했다. 고배를 마셨지만 2010년 교육의원 선거, 2014년 시장 선거에 참여하면서 시민운동에 대한 민심을 보게 되었다. 당시 시민들이 추대하여 선거 비용을 부담하고, 선거 운동을 한 공유 선거를 실천하였다. 우리의 정치 개혁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이 아쉽다. 이렇게 시민운동과 언론, 지방선거 참여 등의 경험이 오롯이 2017년 시민감동연구소로 이어졌다. >2008년 여수세계박람회 마스터플랜 분석 발제하는 사진 3. 시민감동연구소의 역할을 무엇인가? 시민운동과 교직의 경험을 살려서 시민을 만나고, 시민단체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관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일을 하는 디지털 시민운동이다.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시민단체 대표를 지낸 분들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시민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 인생 3모작을 실천해보고 싶다. 똑소리닷컴과 같은 1인미디어 활동을 통해 매일 시민브리핑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블러그, 밴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페 등을 통해 여수를 알리고 여수를 바른길로 안내하고 길라잡이가 되고자 한다.그 밖에도 지역 인사 초청 감동 토크, 지역 경제를 위한 감동품앗이, 국내 여행 감동답사 등 사업을 하고 있다. 1인 출판사로 등록을 해서 4년째 책으로 펴내고 있는 여수역사달력 ‘오늘여수’가 있다. >2009년 예울마루사업추진위원장으로 건축설계자 도미니크 페로와 찍은 사진 4. 여수역사달력, ‘오늘여수’ 제작은 여수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별한 자료다. 어떤 계기와 의미를 담고 있나? 개인용 컴퓨터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시민운동의 모든 내용을 수첩에 기록하였다. 교직에 있을 때는 연간 학사달력을 만들어서 배포를 하였던 경험을 살려서 여수역사달력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여수산단의 환경과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아 시민이 불안해하고 도시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고가 발생한 날을 달력에 기록하여 그 날을 잊지 않고 예방과 주의를 촉구하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2018년 달력을 만들었다. 물론 여수시가 발표만 하고 확인하지 않는 사업 시작도 기록하였다. 아쉬운 점은 여수산단과 여수시청 사무실에 이 달력을 걸고자 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해서 이어나가고 궂은일은 반복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수에서 주요한 일은 달력에 기록한다는 것을 보여줘서 책임 있는 활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5. 여수달력만들기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 여수역사달력이 걸어져 있는 곳을 발견하면 기뻤고, 순천 시민이 여수 식당에서 달력이 걸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전화를 해서 구입하러 왔을 때, 4년째가 되면서 매년 연구소로 찾아오셔서 구입하시는 분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2021년 달력을 불과 2주만에 2천권을 판매했을 때 가슴 벅찼다. 가장 힘든 일은 아직도 여수의 옛 사진이나 역사적 사실을 많이 찾지 못해서 기록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순사건과 같은 큰 사건으로 인해 소멸된 것도 많고 시에서 청사를 이전하면서 관리 보관 소홀로 분실된 것도 많다.시민들이 기록물을 들고 오실 때 감사하고 후대를 위하여 더 많은 사진과 기록을 알려주셨으면 한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 조시 낭송 6. 우리지역 청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 김준옥, 김병호, 김희태 님이 쓰신 ‘오횡묵의 여수잡영 120년 전 여수를 읊다’이다. 여수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기록이 시로 엮어져 있다.1897년 4월 초대 여수군수로 부임해서 1899년 6월 여수를 떠날 때까지 여수의 곳곳을 다니면서 풍경과 역사를 시로 쓴 여수잡영을 더 쉽게 정리를 한 책이다. 120년 전 교통편도 불편한데도 처음 찾은 여수를 이렇게 기록하였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이 우리 지역 청년들이 이 책에서 여수에 대한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서 여수를 새롭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교직당시 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 7. 앞으로 추진하고 싶은 계획은 무엇인가? 시민감동연구소는 여수와 관련된 도서와 문헌, 사진을 더 수집해서 시민들이 옛날 여수를 알고 싶으면 연구소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옛 사진은 수집한 것들을 보기 쉽게 정리를 해서 스마트폰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는 여수 관련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다음 카페를 만들었다. 오늘 여수역사달력을 보는 ‘오늘여수’, 여수의 맛집을 소개하는 ‘여수맛집들’, 여수의 지명을 소개하는 ‘여수지명’, 여자만에서 만난 시민들을 소개하는 ‘여수사람, 여수인’, 20년 넘게 매주 토요일마다 여수를 답사한 여수 이야기 ‘여수의 길’을 카페에 글을 올리고 계속 수정 보완하고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여수의 역사와 현재를 알 수 있는 디지털 여수 소개를 추진하고 있다. 거리가 공원이고 가로수가 넘쳐나는 도시 여수. 차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걷고 싶을 정도로 볼 것이 많은 도시면 좋겠다. 여수를 사랑하는데 한계선은 없다. 언제나 현재진행형, 묵묵히 나의 역할을 하고 싶다. 최향란기자